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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佛敎 여명 밝힌 天柱山

天柱佛光은 깨달음의 상징


본사 취재팀

 
필자가 천주산을 찾은 것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평생 한 번 보광을 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 찾는 그곳 천주산은 선종문화의 메카였다. 천주산은 남북조시대, 특히 수당 이후 도교와 불교가 흥성했었던 곳으로 그곳에 선종이 싹을 틔운 것은 선종의 2·3·4대 조사가 내리 천주산에 주석하면서 선불교의 여명을 밝혀 왔었다. 그 천주산이 선불교의 성지로 우뚝 선 계기는 마조로부터 시작된다.
마조가 남악회양선사에게 깨달음을 인가받고 천주산에 들어와 마조암에서 은거하면서 평상심의 도를 철학적으로 이끌어 내는 계기가 바로 천주산 불광사(佛光寺) 마조암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마조가 남악회양선사에게 인가를 받은 남악형산이 호남성형산과 천주형산 두 곳이고, 이 두 곳에서 마조도일선사가 수행하면서 마조선 철학을 완성하는 계기가 됐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06년 한무제가 천주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이 산을 남악(南岳)이라 부르니 위대한 역사학자 사마천도 황제를 모시고 천주산을 찾은 적이 있다. 그 후 700년간 남악형산으로 그 산명을 유지해 오다가 수문제(隋文帝)가 호남의 형산을 남악형산으로 부른 다음부터 천주산은 남악이란 이름은 잊혀지고, 천주산 또는 잠산으로 불리면서 고남악(古南嶽)으로 불리게 되었다.
천주산이 선불교의 기틀을 닦은 것은 이조 혜가선사가 낙양에서 천주로 내려와 환공산에서 주석하면서 선불교의 싹을 틔운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달마선사의 후계자로 속성은 희씨요, 하남성 출신이었다. 14살 때 달마선사에게 6년간 고행 끝에 마음 법문을 듣고 깨우치면서 선맥을 잇는다. 이후 숭산 소림사로 삼조 승찬선사가 혜가선사를 찾아와 혜가의 선법을 계승한다. 그때 혜가는 삼조 승찬선사에게 전등한 후 대국란이 있을 터이니 행화를 펼치지 말고 깊은 산속에 숨어 버리라고 말했다. 그 길로 혜가를 따라 천주산(환공산)으로 들어와 은거를 시작한다. 개황 10년(590) 천주산 산곡사(현 삼조선사)에 주석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법을 시작하게 된다. 혜가의 예언은 적중하여 그로부터 23년 후 3무1종의 불교법란이 일어나 불교 배불이 시작된다. 그 시기 천주산에 엎드려 있다가 불교 탄압이 끝날 즈음 수나라 문제 때 삼조승찬은 삼조사(三祖寺)에서 선문의 불후의 명제인 『신심명(信心銘)』을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작고한 삼조사 방장을 지낸 굉행선사에게 삼조의 종풍을 묻자 “오직 『신심명』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말하면서 신심명 첫 구절을 인용하였다.
“완전한 도는 체득하기 어려울 게 없으니 다만 분별심만 피하면 된다.”
그의 말씀이 천주산에 메아리쳐 오면서 중국 선종의 별빛을 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삼조승찬선사가 삼조사에서 닦은 터전에 당나라 시기 마조도일선사가 천주산 정상 아래 들어와 마조암 동굴 속에서 은거하면서 평상심의 사상을 완성, 뒷날 중국 선종을 마조선 일색으로 통합하는 계기가 된다. 바로 마조도일선사로부터 시작된 그 한 줄기 별빛은 천주봉의 일곱 빛깔 무지개가 빛나듯 마조선은 중국천하를 주류케 된다. 일곱 빛깔 무지개가 빛나는 그 불광 위로 하늘을 떠받치는 큰 기둥이 서 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孤立擎霽 中天一柱’라는 여덟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1983년 8월 31일 하래조(賀來潮)와 도수운( 修雲) 등에 의해 새겨졌다고 한다. 천주일천봉 중턱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깨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땅, 천주봉은 하늘을 맞닿으려는 구도자의 염원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백거이는 천주산의 아름다움을 한 글로 압축해 냈다. “천주의 한 봉우리가 해와 달을 떠받들고 동굴 문의 천길 벼랑이 구름과 벼락을 묶어 두었네”라고 읊었다.
 천주산 답사는 지난해 9월 단행되었다. 구화산에서 거행된 지장국제학술연토회에 참석하고 천주산 답사를 단행하게 되었다. 천주산은 안휘성 안경시 잠산현에 위치하고 있는 불교 명산일 뿐 아니라 하늘에 맞닿으려는 인간 성불을 염원하는 깨달음의 땅이기도 하다. 그곳을 찾던 날 너무나 날씨가 쾌청하였다. 그날 밤 남악빈관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서둘러서 거의 2시간만에 천주봉 정상에 다다랐다. 그런데 천주산 전상까지는 접근했으나 더 이상은 올라갈 수가 없었다.
천주봉 위를 바라보니 하늘 위에 떠 있는 큰 기둥이라고 누군가가 적어 놓았다. 옛 선승의 화두가 생각난다. 백천간두의 진일보라, 앞으로 나가도 죽고 뒤로 나가도 죽는 그 도리를 깨우칠 때 바로 견성에 이른다는 것을 문득 천주봉을 바라보면서 깨우친다. 원효는 요석공주를 만나기 전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아 세우리라고 온 서라벌을 외치고 다녔다. 그 뒤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얻고 설총이 이두문자를 만듦으로써 신라의 새로운 별이 탄생하게 된다.
천주봉, 그곳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있다. 그 순간이 광명으로 열릴 때 일곱 빛깔 무지개가 떠오르면서 불광의 빛이 광명으로 빛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선문화》2003년 2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04-13 오후 1: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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