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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공간│

선의 얼굴에 담긴 깨달음의 순간들

         

석천(본지 편집 위원)

오늘날의 과학은 복제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학이전에 우리 선지식들은 선의 공간인 자연에서 깨달음의 미학을 체험했었다. 인상학 연구가인 주선희 씨는 동양 인상학의 대표적인 인물로 달마를 꼽았다. 그 뒤 허준과 이제마 등을 들었다.
사실 1천5백 년 전의 달마를 기억해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영녕사조(永寧寺條)」에 달마의 모습을 기록한 것을 근거로 수많은 사람들이 달마의 생김새를 그려 냈다. 「영녕사조」에는 아래의 내용이 전한다.

“서역의 승려 보리달마가 있었는데 그는 파사국 사람이었다. 멀리 변방(荒商) 지역에서 태어나 중국을 유람하다가 영녕사탑의 금반에 해가 비쳐 그 광채가 구름 위까지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바람에 보탁이 흔들려 하늘에서 밤까지 울리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달마의 모습은 갖가지 형상으로 묘사되어 세인들에게 각인되었다. 그 중에서 달마의 카리스마를 가장 잘 타나낸 명장면이 김명국(金明國·1600~1662)의 달마도일 것이다. 주자 어록에 일도양단이란 말이 있다. 단숨에 두 동강 내버린다는 이 말이 선불교와 만난 것은 남전보원의 공안 ‘남전참묘(南泉斬猫)’에서도 등장한다.

동당과 서당이 서로 내 고양이라고 우기자 남전은 고양이를 잡고 대중들이 바로 말하면 고양이를 살릴 것이고 바로 말하지 못하면 두 동강을 내버릴 것이라고 했다. 대중은 소란만 요란할 뿐 한 사람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자 스님은 한 순간에 고양이 목을 잘라 버렸다.
그 날 밤늦게 조주가 돌아 왔을 때 남전은 만약 그 때 조주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눈밝은 선지식이 필요한 시대이다. 조주나 남전이 말한 일도양단의 의미를 정확히 간파해 낸 사람이 김명국이다. 김명국의 달마도는 단숨에 일도양단의 살림살이로 그려 낸 듯하다. 어떻게 단숨에 먹선 하나로 달마의 모습을 그렇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김명국의 예리한 정신 세계가 달마도 속에 절절히 배어 있다.
우선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를 보면 탁 트인 이목구비가 시선을 잡아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매섭게 정면을 노려보는 시선과 우뚝 솟은 코, 짙은 콧수염,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을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달마의 면목을 어김없이 표출시켜 주는 듯했다.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얼굴을 보노라면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을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인(美人)을 놓고 볼 때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를 손꼽는다. 특히,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인 당나라 때 양귀비(楊貴妃)를 손꼽는데 그녀를 놓고 갖가지 평가가 뒤따른다. 가냘프게 생긴 얼굴형인가 풍만형인가를 놓고 볼 때 양귀비는 풍만하게 생긴 미인이라고 했다. 그의 본명은 양옥환, 영락인 출신으로 음률에 조예가 깊고 무가에 능했고 현종의 총비로 일세를 풍미한 여인이었다. 현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양귀비는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 피난길에서 피살되기 직전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중국의 4대 미인을 손꼽자면 월나라 때의 서시(西施), 한나라 때의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당나라 때 양귀비를 들 수 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미의 기준은 삼백(三白), 삼흑(三黑), 삼홍(三紅)을 두었다. 살결과 이가 희어야 하고 눈동자와 눈썹은 검고, 입술과 손톱은 붉어야 미인이라고 하였다.
실학자 최한기는 이목구비가 발라야 하고 사람의 마음씨와 덕성을 미인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듯이 동서양의 미의 기준은 아름다움과 개성이 넘치는 여성다움을 강조했다. 개성미는 달마를 근원으로 했고 미인의 기준은 중국 4대 미인에 오른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에 근원을 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이 미를 추구하는 것이 공통된 인간의 욕망일진대 선불교에서는 미의 극치를 깨달음에서 찾는다.
그것은 어느 석공이 조성한 석굴암 부처님과 같은 돌부처에도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고 자연 속의 바위에서도 미소가 담겨져 있다. 그처럼 오늘날의 미(깨달음)의 극치는 깨달음을 향해 가려는 중생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사람들은 갖가지 얼굴들을 지니고 가득하다. 백제인들은 서산에 마애불을 만들어 백제인의 모습을 돌에 새겼고 신라인들은 인면모 와당 속에 신라인의 모습을 형상화시켜 놓았다. 그처럼 과거 천 년과 다가올 천 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깨달음을 화두처럼 알고 살아간다. 깨달음의 순간들은 제각각이지만 깨침의 순간들은 우리 인간의 군상일지도 모른다.
깨침의 순간들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깨달음을 향해 니르바나로 향하고 있다. 그 니르바나는 곧 깨달음의 순간을 말한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순간들은 갖가지 도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5백나한도이다. 5백나한 속에 500여 명의 깨침의 순간들을 도상으로 담아 냈다.
선의 공간 속에서 우리는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 세계는 곧 깨달음의 세계이다. 불지종찰(佛之宗刹) 통도사에서였다. 월하 스님 영결식이 거행되는 금강계단 앞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모두가 성불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지금까지 선의 공간 속에서 거울에 비치기 전에 자기의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 몰랐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선한 모습인가 추한 모습인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 선종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깨달음의 세계가 열리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얼굴이 있다. 바로 왕건, 견훤, 궁예가 그것이다. 그들은 변혁의 시대에 이 땅을 이끌었던 제왕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놓고 미국 켄사스대학의 허스트 3세 교수는 왕건을 선인(善人)으로 견훤을 악인(惡人)으로 궁예를 추인(醜人)으로 평가한 바 있다. 역시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술된다는 법칙을 간과할 수 없다. 만약 견훤이나 궁예가 승자였다면 그들이 선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인상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세계가 태동하고 있다. 주선희 씨는 국내 인상학 박사 1로 잘못 알려진 인상학의 이미지를 바로잡기 위해 사회학이라는 옷을 빌려 입었다고 토로한 뒤 서양의 인상학이 분석적이고 통계에 의존하는 데 비해 이제마나 달마에서 볼 수 있는 동양의 인상학은 직관적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동양의 인상학은 서양에 비해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있다고 풀이해내기도 했다. 동양의 인상학 중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출해 낸 장면은 가마쿠라시대 일본 고산사의 명해상인이 그린 원효와 의상의 모습이다. 의상이 당으로 떠나는 장면과 원효는 해동으로 발길을 돌리는 장면. 애처롭게 의상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동양적인 인간미를 완벽하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인상학을 말할 때는 원효와 선종 초조 달마를 꼽는다. 원효의 인간적인 면모와 달마의 카리스마가 만났을 때 비로소 깨침의 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의 논리를 뛰어 넘어 인간적 면모를 다룬 동양의 깨달음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선문화》2006년 3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04-13 오후 1: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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