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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린이 해동으로 간 그곳,
하무산 연꽃을 감싸 안은
깨달음의 땅

석천(본지 편집위원)

지난달 중순 중국 저명한 차 학자인 커우단 노사로부터 선화 두 점이 도착했다.
<전법도>와 <한·중 우의정>이 그것이다. 그 선화도를 받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한동안 그 전법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태고보우가 간절한 마음으로 스승을 바라봤다. 석옥청공 스님이 가사와 주장자를 주면서 말씀했다. “이 가사는 오늘 전하지만 법은 영산으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오. 이제 그대에게 전해 주니 잘 보호하여 가져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오” 또 주장자를 들어 석옥은 태고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이것은 노승이 평생 지니던 것이오. 오늘 그대에게 주니 그대는 이것을 길잡이로 삼으시오.”
스님은 절한 뒤에 물러났다. 그러자 태고보우 스님은 스승에게 간곡히 여쭈었다.
“말후구[末後]를 어찌 하리오.”
그러자 석옥은 다시 타일렀다.
“불조의 명맥을 끊어지게 않게 하는 것이 후학의 도리요.”
태고보우 스님은 석옥청공 스님에게 절하고 물러났다. 그러자 석옥은 방장실에서 나와 태고와 함께 하무산을 걸었다. 그러자 다시 석옥청공 스님은 말했다.
“장로여, 우리 집에는 본대 이별이란 것이 없으니 이별이란 생각지 마시오. 부디 노력하시오.”
하무산을 걷다가 태고보우 스님은 “예” 하고 답했다.
이 문답은 1347년 7월 16일 태고보우 스님이 석옥청공 선사에게 법을 받았을 때를 회상한 글이다.
선화를 자세히 살펴보니 석옥청공 선사는 주장자와 가사를 들고 태고보우 국사에게 전법하는 순간을 커우단 노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 폭의 그림으로 회상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태고를 종조로 떠받들고 있는 한국불교계가 할을 맞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외국의 노사가 먼저 <전법도>를 그리고 그 옆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지정 7년 고려의 태고보우 국사는 천리 길을 걸어 석옥청공 선사를 찾아와 구법한 뒤 석옥으로부터 가사를 전해 받고 귀국한 뒤 고려 임제종의 조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하막산의 성적은 한국 임제종의 조정이 되었다.

얼마나 듣고 싶은 문장이었던가. 그 <전법도>를 보면서 필자는 옛 기억이 떠올라 하무산은 깨달음 땅이라 생각하고 다시 붓을 잡고 써 내려갔다.

하무산에 다시 부는 고려의 법향

1996년 비포장도로를 따라 하무산 정상에 올랐을 때 왕시아이치엔(王小犬) 노인이 홀로 하무산을 지키며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하무산정에서 멀리 호수를 바라보니 잔잔히 파도가 출렁거렸다. 그것이  임제종 법손들의 첫 번째 순례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무산에 임제선의 바람이 불어와 중원을 깨웠고 2008년 12월 하무산 정상에 <태고보우헌창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한·중 우의정 대련에 있는 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대련에 천호암 빈 조각달이 선의로 가사와 주장자를 전한 뒤 떠나갔는데 안개 속의 두 나라 신도들도 함께 이루리로다[天湖半月禪 授衣杖而去 霧潤兩國信衆共比根].

커우단 노사는 첫 번째 태고보우의 <전법도>와 두 번째 <한·중 우의정>을 그려 보내 왔다. 두 사람(필자와 커우단)의 우정은 2004년 8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대가 석옥을 아느냐’라고 던진 선문답이 우정으로 싹터 천호암이 한국 임제종 조정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무산에 올라 연꽃 속의 석옥을 보다

하무산 후저우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하무산정에 이르면 마치 안개가 병풍처럼 흘러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바로 여기가 석옥청공이 말년을 보냈던 곳이며 고려 말에 태고보우가 찾아가 임제의 선법을 이어간 곳이기도 하다. 겹겹이 연꽃을 감싸 안은 듯한 하무산 천호샘물이 흘러내려 큰 호수를 이루었다고 한다.
석옥은 종신토록 이 산정에 은거하면서 살아갔다. <하무산>이란 시는 석옥의 살림살이를 엿보게 한다.

하무산 정상에서 바라본 태호의 호수는 날마다 푸르르다.
산 이름이 하막산(霞幕山)이요, 샘 이름이 천호(天湖)에서 살 만한 곳을 가려서 정한 것은 임자년 초로 기억한다[卜居記得壬子初]. 산 위 흙덩이에 반석(磐石)을 얹으니 마치 물에서 나온 푸른 부용과 같구나. 다시 천호(天湖)에 샘이 있어서 선천(先天)부터 지금까지 흐르니 언제나 마르겠는가. 샘 옆에 암자를 지어 이곳에서 늙으려 하니 이곳에는 한 점 홍진(紅塵)도 없구나.
겉으로 드러난 규모는 좁은 것 같지만 중간을 취해 쓰면 넉넉하다네. 푸른 비단은 연기와 같아 황금상을 가리고, 조각한 받침대는 물에 잠겨 하늘의 길을 침범당하네[雕盤沈水凌天衢]. 포단의 참선 의자는 좌우로 벌려 있고 향종(香鐘)과 운판(雲板)은 아침과 낮에 울리네. 질그릇에는 상서로운 풀이 심어져 있고 돌대야의 물에는 용추(龍湫)의 부들이 자라네. 밥은 향기롭고 죽은 부드러우니 산전(山田)의 쌀이라네. 오이는 달고 나물은 매우니 집 정원에서 거둔 야채라네.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모두 놓아 버리고, 가고 앉고 눕는 것에 조금도 걸림이 없다네.

필자는 몇 차례에 걸쳐 하무산에 올랐는데 오를 때마다 안개 속에 안겼다. 그리고 어느 때 안개가 개인 날 묘서진 인민정부사람들과 하무산정에 올랐을 때 석옥청공의 말씀처럼 “탁트인 태호는 만경(萬頃)이란 흰 물결이 일고 동정호는 두 어점 푸르게 열렸으니 처음에는 신선이 머리에 갓을 쓴 듯 푸른 비단 모자가 이리저리 쌓여 있으며 선인들이 내려다 꽃을 바치는 것 같았다.”
덕이 높은 선승들은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듯 했다. 일찍이 한 수행자가 하무산을 보고 말하길 ‘내 마음이 가을 달과 같다’고 했다.
필자는 깨달음의 땅을 답사해 보면서 공통적인 흐름을 발견했다. 그것은 겹겹이 연꽃을 감싼 듯한 산세이다. 하무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석옥은 꺼져 가는 임제선의 불빛을 후세에도 전하고자 하무산으로 숨어 들어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고려인을 인가했을까.
필자는 1996년 하무산을 찾았을 때 왕시아이치엔 노인이 차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앞을 가려 태고의 법통이 만세토록 이어지길 발원했다. 농선병중으로 살아간 석옥청공의 청빈이 묻어난 하무산은 연꽃봉우리에 안긴 듯 했다.
어느 날 석옥은 참선 중에 선기가 번뜩거렸다. 그와 수좌가 나눈 선어에도 그의 선기가 드러난다.
‘참선하는 사람은 맹렬하게 취모검의 칼날이 눈처럼 차야지 부처가 오든 조사가 오든 칼을 들어 애초에 끊어야 한다’라는 선어에서도 석옥의 살림살이는 섬광이 번뜩거리는 것 같았다. 석옥은 눈 밝은 납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려의 태고보우가 그를 찾아와 첫눈에 계합하였다. 그리고 태고보우에게 ‘금린(金鱗: 금빛 잉어)이 곧은 낚시에 올라온다’라는 시구로 자신의 법이 만세토록 고려에 빛나길 염원했다. 고려 말 태고와 석옥이 법을 주고받는 전법세계가 700년이 지난 뒤 한 폭의 <전법도>로 되살아나면서 천호암은 안개가 걷히고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나듯 깨달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것이 700년 전이나 지금에도 수류화개처럼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기사 작성일 : 2010-11-18 오후 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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