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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 제4차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

푸젠차를 통해 동아시아로 간
 쿠카이空海, 원표元表를 보다

시엔즈(賢志, 푸딩 자국사 주지)

지난해 11월 푸딩 자국사에서 열린 제4차 세계 선차문화 교류대회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자국사 주지 시엔즈(賢志) 스님이 푸젠차가 쿠카이(空海)와 원표(元表)를 통해 동아시아로 건너 갔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 자리는 한국의 저명한 차학자 그룹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시엔즈 스님은 더 나아가 원표 대사가 나무열매의 수액을 먹고 수행했다는데 그 나무열매가 차나무일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전문을 공개한다.
- 편집자 주

1. 지난해 푸딩에서 열린 제4차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에서 원표의 차가 신라로 전파했다고 발표하는 자국사 주지 시엔즈 스님.
무엇을 다선(茶禪)이라고 하는가? ‘다선’이라는 말은 송나라 때 원오극근(圓悟克勤·1063~1135)의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게어(偈語)에서 나온다. 차문화와 불교문화, 선문화와 서로 교융(交融)하고 서로 침투하는 일종의 문화현상이다. ‘다선’은 ‘선차문화’를 줄여서 말하는 것으로 자오푸추우(趙朴初) 거사가 생전에 발기하여 성립된 중국선차학회와 타이완(臺灣) 셩룬(聖輪) 법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중화다선문화협회가 전문적으로 다선을 연구하는 학술기구이다.
푸젠(福建)은 6대(大) 차류(茶類) 중 백차(白茶), 홍차(紅茶), 청차(靑茶) 3대 차류의 발원지(백차는 푸딩(福鼎)에서 발원했으며, 홍차, 청차[五龍茶]의 발원지는 무이산(武夷山)이다)로서 차문화의 내용이 깊고 무(無)와 동일하다. 동시에 푸젠은 불교문화가 매우 번성했던 지방으로 선종 8조(祖)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선차칠민(禪茶七뙤)’이 시작되었고 푸젠에서는 많은 선사(禪師)들이 배출되었다. 또한 선종에서 ‘한 송이 꽃에서 5개의 잎이 핀다〔一花開五葉〕’라는 것은 푸젠의 선사와 관계가 밀접하다. ‘남선종(南禪宗)은 만당(晩唐) 때 번영하면서 위앙종(펨仰宗), 조동종(曹洞宗), 임제종(臨濟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 오가(五家)가 형성되었다. 이 오가의 창립자는 민(뙤: 푸젠의 다른 이름)의 승려이거나 득법제자(得法弟子)이다(王榮國 《푸젠불교의 중국불교사에서의 지위와 작용》).’ 민동(뙤東) 하포적(霞浦籍)의 영우(靈佑) 선사는 선종을 솔선하여 개창하여 위앙종을 열었으며, 민후설봉사(뙤侯雪峰寺)는 운문종과 법안종의 조정(祖庭)이 되었으며 선종에서 나타난 ‘오가칠종(五家七宗)’은 푸젠에서 매우 잘 전승되고 전파되었다. 역사를 보면 푸젠은 차문화 내용이 가장 깊은 장소이며 선문화가 가장 흥했던 지역이다. 또한 차와 선이 유기적으로 계합되어 휘황찬란한 푸젠 다선을 이루었다. 불교문화와 차문화가 대외적으로 전파되면서 푸젠 다선은 세계차문화에 적극적인 공헌을 하였다.

1. 푸젠차(福建茶)는 최초로 불교와 인연을 맺은 차

원표가 수행했던 지제산 화엄사. 이곳은 《화엄경》이 동아시아로 전파된 중요한 곳이다.
푸젠의 다선은 매우 넓고 깊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매우 오래되었다. 고서의 기록을 보면 ‘솔선하여 불교와 인연을 맺은 차는 푸젠의 것이다’라고 하였다. 쓰촨(四川) 아안(雅安) 《명산현지(名山縣志)》의 기록을 보면 몽정산(蒙頂山) 지거사(智炬寺)에 석비(石碑)가 하나 있는데 비석에는 송나라 때 시인 손점(孫漸)의시 〈지거사유제(智炬寺留題)〉에서,

昔有漢道人 옛날 한나라 도인이
剃草初爲祖 머리 깎고 처음으로 조사가 되었네
分來建溪芽 시(建溪)의 싹을 뿌려
村村培新土 마을마다 새 땅에 기르고
至今滿蒙頂 지금에 이르러 몽정에 가득 차니
品倍毛家譜 모문석(毛文錫: 당말 오대인으로 대학사)의
                 차보에 평하였다.

도인은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고대 《천하대몽산(天下大蒙山)》의 석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사의 성은 오(吳), 법명은 리진(理眞)이다. 서한(西漢) 엄도(嚴道) 사람으로, 즉 지금의 아지인(雅之人)이다. 오정(五頂)에서 머리를 삭발하고 몽산에서 개산하였다. 고개에 올라가서 영명(靈茗)의 씨앗을 오봉에 심었는데 높이가 한 자가 되지 않았으며 살지도 죽지도 않았고 매우 이상했다. … 중화에 널리 생산되었고 주변의 오랑캐까지 이롭게 하였다. 무역이 이루어졌고 서민들의 의식이 되었으며 위로는 국부를 부유하게 하고 아래로는 민생을 이롭게 하였으며 모든 선사의 공덕이 만대에 이와 같이 보인다.

가경(嘉慶) 감일(甘一) 1년의 《쓰촨통지(四川通志)》 권74 〈아주부선차(雅州府仙茶)〉에 기록에 따르면 ‘명산현 15리에 몽산이 있다. … 한나라 때 감로(甘露) 조사라는 성이 오이고 이름은 리진이 손수 심었다’라고 하였다. 고증에 따르면 서한 때 감로(甘露) 연간은 기원전 54~50년으로 불교가 아직 정식으로 중국에 들어오기 전이다. 당시에는 자연과 신선을 숭상하고 방중술을 부리며 장로불생을 추구하고 속세를 피하고 은거하는 도교사상이 중국에서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오리진은 도인에서 불교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송나라 때 왕상(王象)의 《여지기승(與地記勝)》의 기록에 의하면 ‘서한 때 어느 승려가 고개에 올라가서 차를 몽산에 심었다’라고 하였다.
몽정산 위의 승려는 오리진으로 처음으로 차를 심은 사람이며 처음으로 차를 가지고 불교를 들여온 사람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오리진은 사람들에게 다조(茶祖)로 존경받고 오리진의 공덕과 위대한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쓰촨 아안현과 항저우(杭州) 중국다업박물관에 조상을 세워 기념하고 세계 각국의 차인이 끊임없이 찾아와 조배(朝拜)한다.
승려 오리진은 푸젠의 ‘시(뙤北建溪) 씨’와 인도에서 들어온 중국의 불교경전이 처음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한 메신저로서 ‘다불일가(茶佛一家)’를 개창하였고, 세계에 차씨를 심은 효시로 세계 차 산업에 거대한 공헌을 하였다.

기사 작성일 : 2010-11-18 오후 4: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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