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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다화 37

철관음 발원지에서
초의를 생각한다

운암(차문화 연구가)

동차의 계절(10월~11월)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필자는 지난 11월 철관음차로 유명한 푸젠성 안지(安溪) 사평진에 있었다. 사평은 그 유명한 철관음차의 발원지이다. 철관음은 관음보살과 연관이 있기에 불교인들은 동차가 나올 때마다 관음보살과 철관음을 오버랩시킨다. 그날따라 날씨가 화창하여 사평진에 이르니 사방에서 차향이 느껴졌다. 거리마다 대바구니에 찻잎 고르는 손놀림이 바빴다.

사평진 들머리에서 100여 년간 철관음의 맥을 이어온 철관음의 원조 팔마(八馬)다업에 들러 향긋한 차맛에 빠져들었다. 팔마 직원은 능숙한 솜씨로 찻잎을 개완잔에 넣고 차를 우려냈다. 그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차향에 빠져버렸다. 그 향기에 취해 해마다 동차가 나오는 계절이 다가올 때 쯤 안지를 찾곤 했다.
사평진에서 차로 한참을 돌아 남암촌에 이르렀다. 남암은 바로 철관음차의 발원지로 일컬어진다. 지금 중국에서는 철관음 발원지를 놓고 위설(魏說)과 왕설(王說)이 팽배한데 아직 왕설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지로 나와 중국 차 애호가들과 차를 마시다가 “선생께서는 철관음 발원지를 어디로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자 단박에 “왕설”이라고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안지 사람들은 철관음 발원지차보다 안지 지역에서 나오는 차를 더 선호한다. 이유인즉 서평의 발원지차는 나무가 노쇠하여 철관음 본래의 향기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평 송림촌 송암골보다 서평진 남암촌이 앞선다. 남암촌의 남헌에 이르니 차밭이 온 산을 휘감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청 건륭 원년(1736)에 왕사양이 그의 친구들과 함께 남헌에 이르렀을 때 황폐한 돌밭에서 기이한 차나무를 보고 그것을 캐서 남헌에 이식한 것이 철관음차의 발원이라고 한다. 그 차를 왕사양이 황제에게 올려 황제가 그 차를 보고 “까맣고 반지르르하고 튼실하니 마치 무게가 철과 같고 맛과 향의 아름다움이 관음과 같다” 하여 철관음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로부터 철관음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또 다른 전설은 안지지방에 위(魏)씨 성을 가진 이가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허물어진 암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 암자를 증수하길 발원했다. 그리고 암자 한편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기원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동굴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음날 그 동굴에 가보니 관세음보살은 없고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것을 정성껏 암자 옆에 옮겨 심었는데, 나무가 자라면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 차가 바로 관세음보살의 현몽으로 얻은 차라고 하여 철관음차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 양이 워낙 적어 철관음 모차(母茶)를 만나기 어렵지만 사평 지역은 모차에서 씨를 받아 발화시켜 사평 일대에 대단한 차밭을 일구어 냈다. 그래서 지금은 사평에서 불어 오는 철관음 향기가 세상 밖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모차가 희귀해지자 이른바 진년철관음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진년차는 사평 철관음 발원지차라기보다 사평 일대의 차일 가능성이 크다. 원래 진년철관음차는 그 향기의 암운이 은은하여 차향이 온몸에 배어난다. 필자는 해마다 사평을 찾아 동차의 맛에 빠져든다. 동차를 즐기는 까닭은 봄차에 비해 암운이 은은하여 철관음차 본래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귀국한 뒤 초의차 연구가로부터 초의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초의는 아직 육우(陸羽)나 노동(盧仝)에 비해 걸음마 단계라고 말하자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초의가 차를 통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선의 차와 선》과 문일평의 《다고사》 에 언급이 된 이후 1967년 안재준(安在準) 선생 등이 초의를 세상 밖으로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결정적 부흥의 계기는 1980년대 초 차인들이 주도한 일지암을 건립하면서부터 였다. 안재준 선생은 초의를 말하기를 “초의 선사는 일개 선승이면서도 시·서·화 삼절을 비롯한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고 다산, 자하, 추사, 홍현주 같은 당대의 명사들과도 교분이 두터웠다”고 피력했다. 더 나아가 초의와 추사 사이에는 화후(火候)의 용도(用途)로부터 선리의 대론에 이르기까지 탈속을 뛰어넘었다고 피력했다. 초의가 다승으로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50년 안팎의 일이다. 천년간 회자된 육우, 노동에 비해 우리차를 일으킨 초의 선사를 알리는 데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문득 관음보살을 상징하는 철관음차를 앞에 놓고 초의의 차 정신을 더욱 헌창해야겠다고 생각해 봤다.

 

기사 작성일 : 2010-11-18 오후 4: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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