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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과 쟁점|

조지훈과 청담 스님의

불교계 분쟁

1963년 8월 12일 조지훈이 <한국불교를 살리는 길>이란 논고를 <동아일보>에 기고하면서 야기된 청담 스님과의 불교 논쟁은 4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조지훈이 기고한 글을 청담 스님이 반박하면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조지훈은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의 국문과 출신으로 졸업 후 월정사 강원의 강사를 역임한 바 있다. 논쟁을 전개할 당시에도 조지훈은 종교단체 심의의원이었고 청담 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인데다가 청담 스님은 비구 측을 대표할 수 있는 그 분규의 핵심 당사자였다. 먼저 조지훈의 <한국 불교 살리기>란 글을 살핀 뒤 청담 스님의 반박글을 살펴보겠다.

불교계의 분규는 그동안 허다한 사회적 물의(物議)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한국 불교 자체의 위의(威儀)를 여지없이 실추(失墜)시키고 종단 운영이 파정에 직면하여 그 자체만으로는 재소생할 수 없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불교의 정화원칙에 있어서는 소위 비구승 측의 주장이 여론의 동정을 받는 게 사실이요, 종단의 통합원칙에 있어서는 소위 대처승 측의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쌍방이 모두 정화와 통합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을 자가(自家)의 영도권 아래서만 성취한다는 아집과 독선으로 차 있어서 영탄불상용(永炭不相容)이 되고 만 것이다. 비구승 측의 선 정화 후 통합(先淨化後統合) 원칙은 분규 이후 불교의식도 모르고 선(禪)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방패로 하여 정규(正規)의 불경학습도 거치지 않은 급조(急造) 비구승들이 교권(敎權)을 농단하는 사실을 들어 그게 무슨 중이냐 라고 한다.
이와 같은 근본적 문제의 대립 때문에 수차의 협상은 결렬되었고 정부당국의 조정도 이와 같은 교리에 관한 문제에 있어 일방을 두둔하는 편파적 조정의 과오를 범함으로써 통합의 실(實)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쌍방이 이 문제에 대한 양보가 없는 한 종단을 나누는 수밖에 없고 정부당국도 양파(兩派)의 주장과 명분을 동등하게 살려서 통합을 종용하지 않으려면 그 조정에서 손을 떼고 신앙의 자유원칙에 의하여 종단을 별개로 등록·승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위미(萎靡)한 현상은, 이 양파 종의 분립으로 한국불교의 쇠미(衰癓)뿐 아니라 그 양파가 함께 멸망의 길을 자취(自取)하는 결과에 이를 것을 우려케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분규 당사자인 양파의 중심인물의 아량있는 희의(餼意)를 촉구하고 관계주무(係主務) 당국인 문교부가 공정하고 성의있는 최후의 조정에 나서줄 것을 제의한다. 비구·대처 양파의 주장은 모두 상식적으로는 일리가 있다는 점에서 우열이 없고, 불교 그 자체 내의 교리적 전거(典據)가 다 있어서 시비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정부당국이나 사회인사들은 동등하게 이해해줘야 한다. 불교교리와 불교사에 대한 지식도 없이 지레짐작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논단하고 처결한 논설과 정책은 얼마나 많이 자행(恣行)되었는가 말이다. 그것은 분규의 조정과 통합을 위해서 공(功)보다 해(害)가 더 컸던 것이다. 불교계 당사자가 아닌 우리 국회(局外)의 사회인사의 이 문제에 대한 태도는 그것이 독신수행(獨身修行) 중심의 전통 불교를 좋아하느냐, 대중교화(大衆敎化) 중심의 현대 불교를 좋아하느냐의 기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계의 분규는 지나치게 세속화한 불교의 정화문제로 발단되었고 그 정화의 선결문제로서 승려의 자격문제로 분열되었고 그것이 그대로 암초가 되어 있다. 미리 말해두거니와 필자는 비구승측의 불교정화 요구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이미 일세기 가까운 승려대처 허용을 부정하고 이를 단순한 신도로 간주하려는 그 독선의 주장을 찬성하지 않는다.

2회에 걸쳐 기고한 조지훈의 <한국 불교를 살리는 길>에는 불교 정화의 원칙과 종단 통합의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자 청담 스님은 즉각적인 반론을 폈다. 1963년 8월 20~21일 2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하나의 오해>라는 글로 반론을 전개했다.
청담 스님은 조지훈의 글을 읽고 1주일 뒤 즉각적인 스님의 입장을 개진하였다. 먼저 청담 스님은 조지훈이 분규 해결에 대해 관심을 가진 데 대해 사의를 표하면서 그의 주장은 사견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즉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그에 대한 논평은 적절치가 않다고 못박은 것이다. 그리고 조지훈의 <한국불교를 살리는 길>이란 기고문은 불교를 오해하는 점이 있으니 그 현혹됨을 없애기 위한 지적의 차원이라며 청담 스님은 <하나의 오해>라는 글로 조지훈의 논쟁에 이의를 제기했다.

불교는 지식이 아니요, 종교인만큼 신수봉행(信修奉行)하면 의심할 것이 없다. 오직 지식이거나 상식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불교를 신수봉행해 보지 않은 자는 불교를 논의할 능력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씨(氏)는 또 이어서 “불교교리와 불교사에 대한 지식도 없이 지레짐작으로 문제에 대해서 논단하고 처결한 논설(論說)과 정책은 얼마나 많이 자행되었는가 말이다”라고 대성질포(大聲叱咆)했다. 이 말은 씨(氏) 자신에게 대한 자각으로도 해당될 줄로 안다. 씨(氏)는 또 “비구승 측의 불교정화 요구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이미 일세기 가까운 승려대처 허용을 부정하고 이를 단순한 신도로 간주하려는 그 독선의 주장을 찬성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처승 측의 불교의 대중화·현대화란 시대적 요청을 지지한다”라고 제의했다. 원칙이면 원칙이었지, 그 원칙이 일세기나 변칙으로 행세했다고 해서 원칙이 변할 수는 없다. 왜정(倭政) 반세기 동안 변절자도 많이 생겼고, 친일파도 많이 생겼다고 해서 우리의 민족정기를 고취하는 것이 독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불교의 대중화거나 현대화라는 것은 제도상 방법론이지 불교의 원칙을 고쳐 승(僧)을 속화(俗化)시킨다든지, 교리를 변질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청담 스님은 언설의 교(敎)란 오직 일반 생물과는 달리 본능 일로 방임하는 자연의 도가 아니라 살고자 비자연을 대오하여 생사를 초월하는 수행을 위주로 하는 교(敎)이다. 따라서 조지훈은 한국불교 살리기에 앞서 자신부터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뒤 곧바로 조지훈은 1963년 8월 30~31일 <독선심의 장벽>이란 글로 2회에 걸쳐 반박했다. 조지훈은 자신의 견해를 철저히 부정하며 공박(攻駁)한 청담 스님의 견해에 대한 글을 읽고 그의 견해를 재차 개진했다. 그는 당초 <한국 불교를 살리는 길>을 기고하였을 때 쌍방의 불만을 예고했고 그 내용 중 예상한대로 비구 측의 대표격인 청담 스님의 반응이 나온 것을 이해했던 터였다. 조지훈은 <독선심의 장벽>이란 기고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是)를 시라고 하고 비(非)를 비라고 지적하는 것이 편파(偏頗)요, 고집이라고 생각하는 그 선입견 자체가 진리에 대한 사견(邪見)이요, 공론에 대한 아집이라 하였다. 본래 분별은 없는 것, 분별이라 생각할 때 비로소 분별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아집임은 자인한다.
그리고 청담 스님의 말씀처럼 수행이란 과연 심여장벽(心如墻壁)이고, 따라서 가이입도(可以入道)인지는 모르나 그런 사회고목(死灰枯木) 같이 활기를 결(缺)해서는 교화는 어려우리라 본다. 사회문제로서의 불교 문제의 논의조차 거부하는 씨(氏)의 독선은 수행의 신조인 심여장벽을 어디에나 적용하는 모양이다.

기사 작성일 : 2010-12-22 오후 2: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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