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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최한기는 왜 불교와 노장철학을
허학虛學이라고 했나Ⅱ

 

박정진(철학인류학자)

2. 전통 ‘기(氣)’ 개념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

한국의 자생철학을 만들어내는 데는 전통적인 기(氣)철학의 부활이 필요하다. 그 부활도 단순 부활이 아니라 재해석되고 새롭게 ‘확장된 기(氣)’ 개념이 필요하다. 다행히 구한말 혜강 최한기는 기일원론의 입장에서 기철학(氣哲學)을 집대성하여 《기학(氣學)》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를 토대로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필자의 인류학적 철학이 굳이 21세기에 그를 들먹이면서 논리를 전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를 19세기 말엽에 이룬 민족사상사 혹은 민족철학사적 전통의 토대 위에 세움으로 그의 전통을 잇고자 함이다. 
혜강은 박학다식하여 성학(聖學), 유학(儒學), 성학(性學), 이학(理學), 심학(心學), 불학(佛學) 등 모두 39종 이상의 학을 거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비판을 받지 않은 학문은 성학(聖學)뿐이다.1) 그는 이들 학문을 허무학(虛無學), 성실학(誠實學), 운화학(運化學)으로 크게 대별하였다. “허무학은 귀신, 허무를 이론 근거로 삼는 유해하거나 무익한 학문으로 방술잡학, 외도이단, 선과 불교, 서양종교가 모두 이에 속한다. 성실학은 대체로 우리가 지금 유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분과로 볼 수 있다. 이 학문들은 허무학의 귀신잡설을 물리치기는 하였으나 ‘기’에 대한 증험이 없기 때문에 통일된 기준이 흔들리고 주관적 억측으로 빠져드는 경향성을 갖는다. 운화학은 성학의 근본 취지를 바르게 계승한 것으로 새롭게 제시되는 학문이다”2) 운화학이 바로 그의 후기에 완성되는 기학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혜강은 자신의 기(氣)철학을 집대성하면서 그것이 서양의 근대과학, 특히 물리학을 수용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혜강의 철학을 쉽게 이해했으면 당시 조선은 과학에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 갔을 것이다. 혜강은 당시의 이기(理氣)철학, 이기(理氣)논쟁의 입장에서 서양의 과학문명을 설명하고 도입하는 철학적 기반을 확립하려고 주력한 것 같다. 전통적인 윤리의 문제도 그것 속에서 해석하려고 한 것 같다. 그는 천인운화(天人運化)를 지향하였으며, 전통적인 정치윤리에 해당하는 통민운화(統民運化)도 그 속에 포함했다. 말하자면 그는 물리학적(과학적) 세계와 인문학적 세계에 동시에 적용되는 ‘기학’을 표방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필자가 그의 기(氣)철학의 부활을 시도하는 것은 지금에 와서, 다시 말하면 혜강이 근대를 앞두고 근대과학세계에 문화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적응하고자 전개한 기학을 답습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방금지학’의 말대로 세계는 이미 20세기를 ‘자연과학 시대’로 이끌었으며, 21세기에 들어 새로운 물리적 세계와 우주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성(理性)에 의한 물리(物理)와 윤리(倫理) 등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심각한 회의로 인해 다시 ‘물리’ 대신에 ‘물자체’에 대한 연구인 ‘물학’(物學)이 등장하고 있다. 물학은 인간의 의식에서 코키토를 없애고, 인간의 마음을 자연의 비인격적 구조로 환원하는, 자연의 현상과 같거나, 자연현상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물(物)은 대상이 되는 물질과 다르며, 물질의 운동변화를 있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실체이다.
혜강이 19세기 말에 눈을 뜬 물리(物理)의 세계는 과학의 세계이지, 유물론의 세계가 아니다. 혜강은 흔히 유물론적 유기론자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는데 ‘무형(無形)의 신(神)과 이(理)’가 아니라 ‘유형(有形)의 신(神)과 이(理)’를 탐구하여야 한다는 데서 유형이라는 것을 바로 물질로 단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유형이라고 반드시 물질은 아닌 것이다. 혜강이 유물론자가 아닌 것은 ‘기학’을 전개하면서도 항상 추측(推測)과 신기(神氣)를 양대 기둥으로 삼은 데서 알 수 있다.
신기(神氣)는 기(氣)라는 것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기학’의 존재론적 최고범주이며 시원적 재료이며 인식의 주체이다. 인간과 자연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이다.3) ‘신기’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비록 그가 기학을 ‘유형의 신(神)’, ‘유형의 이(理)’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고 해도 우선 사물 전체를 ‘신기’로 보고 있으며 그것을 과학하기 위해서는 유형을 근거로 하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의 존재론은 바로 ‘신기’에 있다. ‘신(神)’과 ‘기(氣)’야말로 그의 존재론이다. 혜강은 모든 존재론적 용어에 ‘기(氣)’자를 붙인다. 그렇다면 ‘신기’의 존재론적 특성은 ‘기’보다는 ‘신’에 있다.
혜강은 ‘신기’라는 단어에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오히려 기존의 정신과 물질이라는 개념에서 포함하지 못하는 다른 개념도 포함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신기’라는 개념은 무한히 열려진 개념이면서 기존의 닫힌 개념도 포함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모든 개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가 ‘신기’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기’라는 개념을 쓸 때는 대체로 물질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굳이 ‘신기’라는 개념을 쓸 때는 정신적인 것도 포함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혜강은 ‘신’은 오늘날 ‘정신(精神)’에 해당하고, ‘기’는 ‘물질(物質)’에 해당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신’은 인간의 존재양식으로 보는 것 같다. ‘신’을 존재의 광범위한 기반으로 보는 혜강을 유물론자로 보는 것은 속단이며 단견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신’ 혹은 ‘신기’를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주체로 하기도 하고, 때로는 최고의 범주로 하기도 하면서, 이들의 가역성과 이중성, 순환성을 인정하였던 셈이다. 그래서 그는 운화(運化)나 기화(氣化)라는 단어를 중시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이미 당시에 요즘의 과정철학이나 해체철학, 존재론적 철학에 들어갈 여지를 배태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그의 ‘추측’은 과학을 하기 위한 방법론인 셈이다. 만약 혜강을 쉽게 유물론자로 취급한다면 이는 오늘날 과학하는 사람을 모두 유물론자로 단정하는 것과 같다.
유물론과 과학하는 것은 다르다. 통상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료로 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검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존재론의 전부라는 것은 아니다. 유물론은 물질에 너무 가까이 있어 도리어 물질을 보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이는 물질의 진화선상에서 태어난 인류가 자신의 분류학적 특성인 정신을 사용하는 인간, 정신현상을 갖는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물질에 굴복하는 것이다. 도리어 유물론 자체를 구성하는 것도 실은 정신현상의 일부이다. 결국 유물론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토대로 하여,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정반합의 원리를 물질에 그대로 옮겨놓은(변형시킨), 자본주의와 과학이 탄생시킨 사생아인 정치경제적 종교인 셈이다. 
유물론은 실은 이성주의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철학의 물(物)에 대한 항복, 혹은 귀속을 뜻한다. 물에 대한 항복이나 귀속은 한편으로 물(物)의 존재성에 대한 탐구이면서 다른 한편 물(物)의 도구화 혹은 물에 대한 인간의 도구화를 뜻한다. 이것은 겉으로는 물(物)에 대한 존재성의 탐구처럼 보이지만 실은 존재의 탐구가 아니라 존재자의 탐구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이는 유물론자들이 신(神)을 부정하는 데서 잘 파악할 수 있다.
무신론자들이 신을 부정하는 것은 좋은데 그 부정 속에 신(神)만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부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명확하게 분리 추출할 수 없다는 데에 인간부정의 원천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노동을 가장 중시하고 인간주의를 천명하면서 출발한 유물론이 결국 인간을 부정하게 되고, 감시하게 되고, 결국 공산 소비에트처럼 공산당 귀족의 전체주의로 몰락하게 되는 것은 유물론의 단지 정치적인 적용과 실천의 잘못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을 부정하는 데서 기인하게 된다. 그래서 유물론자는 세계를 주인과 노예로 돌아가게 하고, 무산자와 유산자로 돌아가게 함으로서 계급투쟁을 부르고, 끝내 다함께 못사는 ‘빈곤의 평준화’에 이르게 한다. 유물론은 신을 몰아낸 다음에 결국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고 만 셈이다.
혜강은 《신기통(神氣通)》(1836년 5월, 3권 2책)과 《추측록(推測錄)》(1836년 2월, 6권 3책)을 쓰고 이것을 합해서 《기측체의(氣測體義)》(1836년 10월, 9권 5책)를 펴냈다. 아마도 1836년을 전후하여 그의 학문의 대강이 완성된 듯하다. 그의 《기학(氣學)》(1957년 11월, 2권)은 비록 그 후 20여년 뒤에 세상에 나오지만 말이다.
혜강에 대한 연구는, 북한이 1960년 《조선철학사 上》에 처음 거론하여 주도한 까닭에 당시에 결정된 ‘유물론적 유기론자’로 굳어진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기(氣)의 운화(運化)하는 특성으로 볼 때 유물(唯物)로서 규정하는 것은 ‘기’의 결정성(結晶性)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의 비결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는 본질적으로 비결정성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 어떤 개념정의보다 혜강의 ‘기’는 존재의 ‘바탕(matrix)’ 혹은 ‘물(物, material) 자체’, ‘존재 그 자체’라고 하는 편이 옳다. 기(氣)는 물질(物質)을 포함하지만 바로 물질, 혹은 유물(唯物)만은 아닌 것이다. 혜강은 기(氣)를 운화지기(運化之氣)와 형질지기(形質之氣)로 나눈다. 바로 ‘운화지기’라는 것은 혜강의 기학을 유물론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됨을 웅변한다.
혜강의 기철학은 명말·청초의 방이지(方以智·1611~1671)와 대진(戴震·1724~1777)의 영향을 입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방이지는 주자학의 객관적 관념론의 성격에 대해서는 ‘기’를 떠나 ‘이’를 파악하는 것[離氣執理]이나 도구(器)를 버리고 ‘도’를 논의하는 것[掃器言道]으로 지적하고, 양명학과 불교의 주관적 관념론의 성격에 대해서는 사물을 버리고 마음을 존중하는 것[掃物尊心]이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방이지는 사물을 버리고 ‘이’를 논의하거나[舍物以言理] 공허함에 맡겨두고 사물을 개발하지 않는[托空以愚物] 것을 학문에 거역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부정한다.4)
대진은 ‘기화’의 개념을 통해 ‘기’ 자체의 기본 성격인 활동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도’의 개념을 ‘기’의 운동현상인 ‘기화’와 일치시킴으로써[道卽氣化], 성리학적 전통에서 이루어진 관념적 본체의 세계를 현상적 운동의 세계로 끌어내린다. 그는 ‘기’가 음양오행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하여 음양오행론적 자연관을 계승하고 있지만 음양오행이 바로 ‘도’의 실체임을 이해함으로써 관념적 본체론을 거부하고 물질적 실체론을 확립시키고 있다.5)
대진은 또 종래의 본체와 현상의 관계를 형이상과 형이하, 혹은 체(體)와 용(用)으로 보던 것을 전후(前後)의 관계로 보면서 생성론적인 태도를 취한다.6) 방이지와 대진, 그리고 혜강의 기학적 성격을 도식화한 금장태는 방이지가 형이상학과 음양론을 모두 거부하는 것으로, 혜강도 형이상학과 음양론을 모두 거부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진은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음양오행을 긍정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혜강은 방이지에 가깝다. 물론 명말·청초의 중국 기철학자와 혜강이 모두 과학을 지향하였지만 수식으로 표현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일종의 문명적 한계이다. 
혜강이 철학적으로(사변적으로) 대처하려한 것을 이미 서구과학자들은 수학적으로, 수식(數式)으로 도달하였다. 오늘날은 소위 근대과학의 전범으로 생각하는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넘어서 아인슈타인에 의해 정립된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의 시대로 진입하였다. 혜강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근대과학이 성취한 물리 세계의 수학적 정복을 달성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과학자라기보다는 역시 철학자인 셈이다. 혜강의 기철학의 장점은 그가 세계를 열려진 세계로 바라보게 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경험하지 못하고 증명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는 항상 열린 태도를 견지하게 하였으며, 세계를 동적인 세계로 바라보게 하였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내놓은 후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는 분명해졌으며, 세계를 이제 물질의 입장이 아니라 에너지의 입장에서 새롭게 전개하여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아직 에너지의 세계에 대한 이론이 확실히 정립된 것은 아니다. 단지 빅뱅이론이나 블랙홀이론과 같은 과학적 성과들은 거꾸로 인문학, 사회학자들에게 큰 놀라움과 개안(開眼)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고,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인류라는 동물 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사 작성일 : 2010-12-22 오후 3: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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