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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테마기획│세계 차는 지금

 

느림과 기다림에서 빠른 스피드로

 넘어간 茶道의 세계

 

운암(차문화 연구가)

 

국악과 차의 만남에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이 어울린다. 느릿하게 울리는 가야금과 차를 우려내는 시간, 찻물 떨어지는 시간의 기다림을 두고 느림의 미학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차계에서 느림의 미학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 감지되었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한국인의 모습처럼 현대인의 생활이 스피드를 중요시하는 쪽으로 옮겨 가면서 이제 차 또한 느림에서 빠른 쪽으로 다가섰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녹차를 마실 수 있는 페트병의 등장과 관련해 자연스럽게 다례하듯 한복을 곱게 입고 마시는 차보다 움직이는 행선(行禪)의 차의 세계로 다가왔다. 본지는 창간 9주년을 맞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계 차의 움직임을 따라가 봤다.

 

잘못 인식된 음다 문화의 변화를 바라며

 

서울의 중심 인사동 거리에서 연인들이 페트병에 담긴 차를 마시면서 걷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1980년대 인사동은 다원이 늘어나면서 전통차 마시기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바쁜 생활 속에서 다례하듯 고상하게 앉아서 차를 마시는 시대는 지나갔다. 차는 빠른 속도로 느림의 미학에서 빠른 움직임 쪽으로 옮겨갔다.
지난 12월 말 몇몇 다우들과 가회동의 우아한 찻집에서 차 한 잔을 시켰다. 그중 한 다우가 추운 겨울에는 둥굴레차가 제격이라며 둥굴레차를 시켰다. 그러자 일회용 티백이 나왔다. 그 다우는 깜짝 놀랐다.
“티백 종류 말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라고 묻자 그 집 주인은 난처한 듯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간편한 것을 좋아해 티백 종류밖에 없다고 말한 뒤 다시 유자차로 바꾸어 주었다. 이것이 한국차의 현실이다.
예전에 백운암에서 작고한 서옹 큰스님으로부터 중요한 말을 들은 바 있다.

“한국인들은 침략만 받아온 까닭에 빨리빨리 문화에 길들여졌다. 그러나 선을 하면 급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승의 말씀이다. 바쁘다는 말은 곧 앞만 보고 달린다는 말이다. 국악과 선, 다도가 느림으로 바꾸어 놓은 것 같더니 차 마시는 과정이 스피드한 차생활로 옮겨간 까닭은 무엇일까.
찻물 떨어지는 순간을 쉬어 가다 보면 한 생각을 쉬게 한 것이 차문화이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구수한 맛이 나는 현미 티백이 유행하면서 뜨거운 물에 간편하게 티백을 넣어 마시는 차 풍속으로 전이되었고,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티백류가 한국차의 주류로 흘러갔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은 달랐다. 차의 혁명으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페트병에 담긴 차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전통차를 고수하는 쪽에서는 페트병보다 찻잎을 뜨거운 물에 넣고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잎차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음다풍속은 다산 정양용이 《아언각비(雅言覺非)》에 지적한 바와 같이 차를 단순히 탕환고(湯丸膏)처럼 마시는 따위로 인식하여 무릇 단조롭게 마시는 약물을 모두 차라고 불렀다. 모과차, 귤차, 대추차 등을 모두 차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선조들은 곡우 전후에 올라온 새순을 따서 법제한 것을 차라고 불렀다. 그 밖의 차는 음료로 불러야 한다고 다산 정약용은 지적한 바 있다.

 

기다림의 미학 차에서 배우다

 

현대인들은 걸으면서 참선하는 행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차문화를 놓고 볼 때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지난 28일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우회 행차법이 시연되었다. 구슬이 구슬을 비추다라는 뜻의 인드라망(因陀羅網)은 《화엄경》에 나오는 구슬 그물을 찻자리에 그대로 옮겨 놓은 행차법이다. 12명의 다우가 촛불을 들고 무대 위를 밝히며 들어서자 삼라만상이 환하게 밝아 왔다. 다우들은 원을 그리며 앉았고, 그 중앙의 4명이 좌선삼매에 빠지듯 차를 동선에 맞추어 우려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마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투영되고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되는 것 같이 환하게 밝아 왔다. 그리고 좌선삼매에 빠지듯 동선이 움직였다. 이내 구슬을 하나씩 들고 빠져나가자 공간은 텅 비었다. 이번 숙우회의 인드라망 행차법을 지켜본 도법(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스님은 “《화엄경》의 제석천 궁전에 투영된 보배 구슬인 인드라망을 차로 절묘하게 표현했다”고 피력했다.

``구슬이 구슬을 비추다``라는 인드라망을 행차로 끌어낸 장면.

차가 초스피드로 옮겨가는 지금 숙우회 행차법이 보여준 인드라망은 욕망을 좇는 현대인에게 한 템포 쉬어가는 절제미의 순간과 깨달음 세계를 다도를 통해 보여주어 또 다른 차의 세계관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도의 세계에서 느림과 기다림을 잘 드러낸 것이 한 잔의 차를 우려내는 의식이다. 좋은 차와 알맞은 물의 온도, 기다림 이 세 박자가 잘 맞을 때 차의 세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드라망을 행차법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절제미로 절묘하게 표현하였다. 정병 위에 꽃 한 송이를 꽂고 팽주가 정성스럽게 차를 우려냈다. 그 차를 받은 다우의 마음이 차 한 잔 속에 느림과 기다림의 아름다움으로 녹아났다. 그것이 구슬(불빛)이 구슬을 비춘다는 보배 구슬이며 차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차에서 세계의 차가 기다려진다

 

예전에 대만의 훠리전(呂禮臻) 선생과 다담을 나누다가 “차는 나라의 영토를 개척하듯 영토를 확장한다”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푸얼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윈난은 푸얼차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는 중국의 한 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푸얼차가 세계적 명차가 되면서 윈난을 차 이름에서 딴 푸얼시로 바꾸었고, 그러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한국차가 시작된 땅 하동은 어떠한가. 최치원의 <진감국사비>에 》신라 때 한차를 찾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았다고 했다. 그 말을 좇아 세계적 명차를 만들려는 명인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아직 작설차와 황차에만 매달릴 뿐 누구 하나 한차를 만드는 사람이 없다. 한차의 존재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어느 차인의 조소적인 말이 들려온다. 󰡒왜 우리는 금준미(金駿眉)처럼 새로운 차를 만들어 내지 못할까󰡓라는 담담한 심정을 들은 바 있다. 그 차는 바로 무이산 시성촌진 동목촌에서 나온 차를 말한다.
지난 10월 샤먼에서 열린 국제차엽박람회에서는 금준미가 인기였다. 그러나 수많은 짝퉁 금준미가 나오면서 어떤 차가 진짜 금준미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진년 금준미는 맛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다고 무이산 동목촌의 한 차농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녹차가 생산되지만 아직 진년작설 원조는 어디에도 없다. 수많은 짝퉁이 나올 때 비로소 한국의 차문화는 평천하 하리라고 창간 9주년을 맞아 되돌아봤다.

 

- <차의 세계> 1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11-01-11 오전 11: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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