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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다화 (39)│

사각하늘 아래
가이세키 요리를 맛본 후

말차 한 잔

운암(차문화 연구가)


차실 안에 걸린 ‘독좌대웅봉’ 족자.
차의 격조가 한층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갖가지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기 직전에 꼭 다식을 먼저 먹는다. 그리고 차회에 임할 때 숯불을 먼저 피운 뒤에 차실에서 차를 마신다. 가이세키 요리(會席料理)는 원래 선가의 정진 요리로부터 출발해서 그것이 다도계로 옮겨갔다. 중국에서는 일절 파, 마늘, 고기 육류를 쓰지 않고 만든 소식(素食) 요리가 유명하다. 필자는 최근 몇 달 사이에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차회에 흠뻑 빠져 버렸다.
지난해 10월 25일 일본 교토의 키즈소센(木津宗詮)가문에서 마련한 화(和)를 주제로 4시간 동안 계속된 일기일회(一期一會) 차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6대에 걸쳐서 이어진 명문다도 종가인 키즈가문의 차도구가 감미로운 차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였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12월 16일 양평 서종면에 위치한 ‘사각하늘’에서 가이세키 요리 이후 맛본 말차 한 잔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난해 10월 평생 한 번밖에 맛볼 수 없는 일본 교토에서 일기일회의 차회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사각하늘’에서 맛본 가이세키 요리는 주인인 구보 씨와 김혜옥 부부가 정성껏 마련한 뜻깊은 자리였다. 
가이세키가 일본 다도계로 옮겨 간 것은 차와 선의 불가결한 만남이 아닐 수 없겠다.
차를 맛있게 들기 위해 먼저 먹는 가이세키 요리를 차회에 초대하는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다. 보통 4시간이 소요되는 이 차회는 차인들의 격을 한층 높여 준다. 지금까지는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었으나 10여 년 전 양수리 인근의 음식점인 ‘사각하늘’은 가이세키 요리 이후의 차 한 잔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차인들에게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그날따라 전날에 내린 눈이 ‘사각하늘’을 눈 속에 빠지게 했다. ‘사각하늘’이란 이름은 음식점 안에서 밖을 볼 때 사각모양의 하늘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사각하늘’이다.
지난해 10월 교토의 키즈소센 가문이 정성껏 내놓은 가이세키 요리에서 주인과 손님이 하나가 됨을 느꼈다. 키즈소센은 먼저 손님에게 뜨겁게 우려낸 정종 술을 권한 뒤 주인도 같이 마셨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쿠라사와 교수께서 평소 키스소센 선생께서 술을 너무나 좋아해 그날따라 술맛이 더욱 일품이었다고 들려주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각하늘에서 맛본 가이세키 요리도 일품이었다.
주인의 초대를 받고 사각하늘에 이르니 구보 씨와 김혜옥 부부가 정성껏 마련한 가이세키 요리가 나왔다. 매실주로 분위기를 띄운 뒤 유자 속에 꿀과 찜을 넣은 요리가 나왔다. 이윽고 깨로 만든 만두, 파래김이 어울려 있는 곤약무침, 연근과 새우가 들어간 어묵국, 도미회, 양배추 샐러드, 산과 바다가 만난 무침요리, 밥과 국이 나온 뒤 마무리된다. 가이세키 요리를 먹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그 순간들은 환상적이다. 손님과 주인이 둘이 아닌 하나로 이뤄지는 느낌이다.
2시간 동안 계속된 식사를 마친 뒤 별도로 마련된 차실 문을 열자 마침 밤의 달빛으로 인해 문살의 창호지에 비춰진 대나무 그림자가 일품이었다. 필자는 차회에 임할 때마다 자연이 이뤄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놀란 바가 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좌측에 독좌대웅봉(獨坐大雄蜂)이란 차실에 들어서니 어떤 지인이 써주었다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족자는 홀로 앉아 차를 마신다는 뜻이고 대웅봉이란 백장청규를 제정한 백장회해 선사가 주석한 백장사의 산봉우리가 대웅봉이었다. 그때서야 우리를 초대한 사각하늘의 주인이 보통 차인이 아님을 알 것 같았다. 그때 필자가 대웅봉은 백장 선사가 조성한 산봉우리인데 오늘 차회와 어울린다고 말하자 주인은 매우 반겼다.
2010년 10월 교토 키즈소센가문에서 좁은 문을 열고 차실에 들어선 뒤 숯불을 피우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차실 방안의 돌솥에 물이 끓고 있었다. 지난번 일본에서는 가이세키 요리를 먹기 전 손을 씻고 좋은 차실 문을 열고 들어 주인은 우리를 차실로 초대해 먼저 숯불을 붙이고 그 다음 정진요리에 임하게 했다.
이번 사각하늘에서는 미리 주인이 차실 안의 돌솥에 숯불을 붙이고 손님을 기다렸다. 우리가 가이세키 요리를 먹은 뒤 차실에 이르니 돌솥에 물이 끓고 있었다. 숯불을 붙일 때 침향을 넣자 차실 안은 침향 향기가 은은히 퍼져 나갔다.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돌솥 솥뚜껑을 열고 물을 떠서 다완에 적당히 넣었다. 그리고 차선으로 말차를 잡고 푸른빛깔의 말차를 다완에 넣은 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자세로 차를 저어 손님에게 내놓았다.
먼저 정성껏 준비한 다식을 먹은 뒤 말차 한 잔씩을 마시고 주인이 어렵게 구한 다완을 감상했다. 이렇게 4시간의 향긋한 차의 세계에 빠져 들었던 그 순간은 행복했다. 두 달 간격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기일회 차회는 나로 하여금 더욱 차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에이사이 선사가 중국에 유학 갔을 때 차씨를 가져와 큐슈(九州)의 세부리산에 뿌린 뒤 일본 말차가 정착된 뒤 그것이 선사에서 즐겨 먹었던 정진 요리에 차를 곁들여 가이세키 요리로 정착, 차문화의 격조를 높인 일본 다도의 저력을 보니 놀라웠다. 요리를 먹은 뒤에 맛본 말차 한 잔은 그날 창호지 사이에 비친 대죽 그림자처럼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어 그 맛이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다.

기사 작성일 : 2011-01-19 오후 2: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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