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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다화 (41)│

츠챠취가 맺어진

잊을 수 없는 인연과

용흥사에서 맛 본 향기로운 차맛

 

운암(차문화 연구가)

 

겨우내 한파로 찻잎이 붉게 말라버리는 사이 봄을 알리는 우수(雨水)를 맞았다. 필자는 우수날 뜻밖의 차맛에 흠뻑 빠져 들었다. 지난 18일 중국 칭다오(靑島)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산둥성 칭저우(靑州) 용흥사 주지 스구어청(釋果澄) 스님과 다담을 나누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필자가 칭저우 용흥사를 찾은 것은 츠챠취(喫茶去)를 공안으로 일세를 풍미한 조주종심(趙州從○·778~897) 선사의 고향이 인근에 있어 참배할 목적이었다. 조주는 산둥성 린쯔현에서 태어났다. 《조당집》에는 청사(靑社) 치구(緇丘) 사람으로 기록되어 조주가 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731~781) 장군이 세운 제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당집》이 전하는 칭저우의 용흥사는 제나라 수도 린쯔시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그렇게 보면 조주는 제나라 백성이었음이 분명해진다.
필자는 제나라 역사박물관에서 제나라 시대의 생활상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곧바로 용흥사를 찾아 나섰다. 용흥사는 여러 차례 길 안내를 받은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용흥사에 이르자 해가 서산에 기울어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산문 안으로 들어서자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사찰 안은 어수선했다. 마침 어둠 속에 불빛이 환하게 비쳤는데 스님 몇 분이 걸어 내려왔다. 그 중 한 스님에게 필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매우 반갑게 맞았고 뒤에 내려오는 주지 스구어청 스님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필자가 츠챠취를 이끌어낸 조주의 출가지를 찾아 이렇게 용흥사를 찾게 되었다고 말하자 스구어청 스님은 감격하며 “여기가 조주의 출가지임을 어찌 알고 찾아왔습니까?”라고 말했다. 필자가 “츠챠취의 원류를 찾아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필자를 사무실 안의 차실로 안내했다.

갖가지 차를 품다하는 칭저우 용흥사 주지.
차실은 스구어청 스님이 가까운 벗과 차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곳인데 필자를 보더니 오늘 밤새워 담소를 나누자며 극진히 대했다. 평소에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대중들과 경을 읽는데 오늘따라 산문을 거닐고 싶어 나왔다가 필자와 마주쳤다며 스님은 이것이 오랜 숙세의 인연이라는 말로 찻자리를 이끌었다.
스님은 필자에게 어떤 차를 좋아하냐고 물어왔다. 필자는 녹차나 대홍포를 즐긴다고 말했다. 녹차를 먼저 하자고 제안하자 내심 녹차를 마시고 싶었던 스님은 반기며 자신이 아끼고 있던 녹차가 있는데 먼저 그 차부터 마셔 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깊숙이 간직해 온 녹차를 꺼내더니 “이 차는 칭저우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차입니다”라며 귀한 손님이 왔으니 특별히 내놓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차칙(茶則)을 잡더니 차를 한 움큼 차호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자 차향이 온 방안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한 잔씩 우려냈다. 잔을 잡고 차를 마시니 입안 가득 감도는 진한 차향이 온몸에 와 닿았다. 정말 좋은 차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는 것을 실감했다.
찻자리가 무르익어 가자 이정기 장군의 내력과 조주의 츠챠취의 의미를 스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은 차향만 즐기고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말을 아꼈다. 스님이 보통이 아님을 그때서야 직감하고 말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몇 차례 차를 더 마시자 차향이 온 몸에 배었다. 그때 스님은 용흥사의 내력을 담은 CD를 보여 주었다. 말 대신 실천을 강조한 스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차호에서 녹차의 향이 빠져나갈 쯤 두 번째로 중국 명차 대홍포를 마시자고 권했다. 스님은 이번에도 진귀한 대홍포를 내놓았다. 진한 암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필자는 잔에 비친 차의 빛깔을 사진에 담았다. 그러나 잔의 색에 가려 선명하게 찍히지 않아 백자잔에 다시 차를 따랐다. 대홍포 특유의 등황색이 사진기에 담기자 스님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지나자 스님은 다선일미의 진체(眞體)를 말하기 시작했다. “선차란 모든 망상을 버리고 오직 차에 몰입할 때 진정한 차의 진미를 얻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조주가 말한 츠챠취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했다. 그리고 차를 마실 때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내가 누구인가를 탐구해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선차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동안 갖가지 생각과 잡념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를 깨달아 가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선차의 의미라고 말했다. 조주가 말한 츠챠취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어느덧 밤 9시가 가까워오자 다음 기회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찻자리를 마무리했다. 스님은 우리에게 기념이 될 글을 한 폭씩 주었다. 필자에게는 인연[緣]을 담은 글이었다.

萬法皆國緣
因果來極枕
順達子動心
脩行在心星

연(緣)·덕(德)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스구어청 스님.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도 근기에 맞는 ‘불광보조(佛光普照) 견현사제(見賢思齊)’ 등 글을 써 주었다. 서법가로도 일가를 이룬 스구어청 스님은 일도양단의 자세로 글을 써 내려갔다. 사무실 벽면에 걸린 오회염불 송을 보고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법조가 오대산에서 오회염불을 향한 글이었다. 중국에서 무상의 인성염불을 법조가 오회염불로 이어간 것이 지금까지 중국 도처에서 오회염불 송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보고 감격했다. 스님에게 오회염불에 대해 묻자 익히 중국에서 행하고 있는 수행법 중 하나로 용흥사의 수행 가풍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선의 거울로 삼는 것 또한 오회염불법이라고 말했다. 스님이 정토염불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국 땅에서 신라의 혼이 깃든 무상 행화의 자취를 느끼게 되어 감동했다.
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휘호를와 갖가지 경책, CD 등을 받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깜깜한 밤중에 용흥사를 빠져나왔다. 그때 용담숭신(龍潭崇信) 선사를 찾아간 덕산선감(德山宣鑑)의 일화가 떠올랐다. 덕산이 바깥이 깜깜하다고 말하자 용담은 촛불을 켜서 덕산에게 주려는 순간 불을 꺼버렸다. 그 순간에 깨우친 덕산의 진면목이 오늘 용흥사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스님은 우리 일행을 산문 밖까지 배웅했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차가 사라져갈 때까지 스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칭다오에 도착할 때까지 스님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자, 차 마시는 동안 온갖 마음을 비워 보세. 그것이 조주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스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마음을 적셔 왔다.

기사 작성일 : 2011-03-22 오후 3: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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