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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수 기행 ①

 

다기에 소우주를 담다

 

최석환(본지 발행인)

 

2011년 3월 10일 5시 50분, 애뢰산(哀牢山) 아래 해발 2,280m에 있는 천가채(千家寨) 차왕수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틀을 달려 6시간을 주행한 끝에 거령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차왕수에 헌다를 마친 뒤, 차 한 잔이 간절해진 필자는 한국에서 함께 고차수 탐험에 나선 보천사 주지 법진 스님에게 차왕수 앞에서 차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마침 보온병에 뜨거운 물이 남아 있어 한국에서 가져간 은다기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다기의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다기에 비친 찻잎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려는데, 우연히 다기에 담긴 찻물 위로 차왕수의 모습이 비쳐 들어왔다. 그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카메라 셔터를 멈출 수 없었다. 높이 19.5m나 되는 차왕수가 다기에 담긴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 순간 필자는 2005년경 오대산 우통수를 찾았다가 잔설이 내려앉은 나뭇가지가 우통수 물에 담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던 일이 생각났다. 셔터를 누르는 동안 다기 속의 찻물에 차나무의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6시가 다가오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과 3분 간격으로 벌어진 그날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 그 순간을 지켜본 뒤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살핀 법진 스님은 우담바라의 꽃이 피는 것과 같은 길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왕수 나무를 살피다가 내려온 보천다회 지민 스님은 차왕수를 한국의 차와 다기에 담아 가니 한국과 중국이 차향처럼 오래 이어지길 비는 거령신(巨靈神)의 감은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을 지켜본 중국 <해협다도>지의 첸용광(陳勇光) 기자는 있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최 선생의 원력이 중국과 차연으로 맺어진 결과라고 평했다. 이렇듯 순간에 펼쳐진 광경을 필자는 다기에 담긴 소우주라고 정의했다.

차왕수를 찾아 애뢰산을 가다

차왕수를 찾는 길은 고행의 길이었다. 지난 7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만에 쿤밍에 내린 우리 일행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공죽사에서 오백나한당 앞에 나아가 신라의 무상 선사에게 헌다를 마치고 무사히 차왕수를 친견할 수 있길 발원했다. 보천사 법진 스님과 지민 스님, 이영조 다우, 일본 나고야에서 온 우라모토준코 여사와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지묵당 등이 두 대의 차로 멀고 먼 천가채로 향했다.
쿤밍에서 구갑(九甲)마을까지는 11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쿤밍을 빠져나와 쌍백으로 가는 도중에 도로공사로 길이 통제되는 바람에 4시간을 길 위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차량이 머무르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간 중국인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여기서 서두르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는 그들만의 만만디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그들을 보면서 마조의 평상심을 생각했다.
차량이 긴 행렬로 늘어선 도로 앞에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다. 필자는 유채향이 나는 곳을 따라 강가로 내려가 개울을 건넜다. 목동이 소를 몰고 유유자적하는 모습부터 아낙네가 물소를 목욕시키는 모습,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등을 바라보며 마치 선재 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 했던 갖가지 사람을 만나는 구도 행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느새 해는 서산에 기울었다. 마을 담장에 복사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그 사이 물소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물소를 바라보며 개울로 내려가자 지평선 멀리에 있던 아이들이 소 가까이 다가왔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소와 한마음이 되어 놀았다. 벌써 해는 졌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마을 곳곳에 복사꽃과 매화 등이 만발하여 차와 사람이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차왕수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4시간 멈춰 서는 사이 선재 동자를 만나면서 필자는 문득 거령신을 만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7시 30분이 돼서야 어둠을 헤치고 쌍백을 빠져나왔다. 쿤밍에서 애뢰산에 가는 동안 붉게 물든 가시오동(剌桐, Ekythkim Vakieyata)나무를 만났다. 그 나무가 윈난 지역에 많은 까닭은 약재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또 솜나무[木棉花, Gossampinus malabarica]의 꽃봉오리를 말려 이질이나 설사 등의 치료약으로 쓰는 등 윈난 사람들은 나무 하나도 소중한 자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거령신을 찾아 애뢰산을 가다

9일의 아침이 밝자 일찍부터 애뢰산의 인근 구갑을 향해 출발한 우리 일행은 가는 곳마다 자연에 도취되어 길에 멈춰 섰다. 법진 스님은 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감탄을 연발했다. 논밭을 일구며 목축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윈난 사람들의 삶이 가슴에 와 닿았다. 쌍백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들은 4시가 돼서야 구갑마을에 도착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서둘러 애뢰산 차왕수를 친견키 위해 향정부로 갔는데 일이 생겼다. 애뢰산은 일급국가보호구역이므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현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구갑향정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잡지사 연합취재 목적으로 왔다고 우리의 취재 목적을 말하자 향정부 관리가 현정부를 뛰어다니며 극적으로 허가를 얻어 11시 30분경 허가가 났다.
구갑 세계 차왕호텔에서 미리 점심을 먹고 12시쯤 출발한 우리 일행은 12시 40분에야 애뢰산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애뢰산 차왕수까지는 해발 2,280m로 3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였다. 애뢰산은 천년 고차수의 보호를 위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마을 사람들까지 입산이 금지된 덕에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애뢰산 입구를 향해 걷다가 구천폭포(九天瀑布)를 만났는데 차왕수를 친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폭포수였다. 그 물결이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일찍이 왕안석(王安石) 시인은 애뢰산의 아름다움을 한 편의 시로 읊었다.

세상의 독특하고 웅장하고 별나며 괴상한 경치는 항상 멀고 험한 곳에 있어 인적이 드문 곳에 있다. 뜻있는 자가 아니며 이를 수 없다. 그 깎아지른 절벽 위에 사람들이 가 본 적이 없으니 도화원(桃花源)이나 혹은 어떤 보물을 숨겨 놓을 수도 있겠는가.

왕안석의 시를 음미하면서 구천폭포에 이르니 왕안석의 말이 실감 났다. 폭포 옆 차나무에서 내려다본 연못은 무척 맑아 밑바닥까지 환히 볼 수 있었다. 폭포 양측의 깎아지른 절벽은 높고 험하여 거의 하늘과 땅이 수직으로 맞닿은 구름 끝에 곧게 뻗은 것 같았다. 폭포 소리를 들으며 애뢰산으로 향했다.
사슴들이 자신들의 낙원처럼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애뢰산으로 가는 중간 철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애뢰산 관리소에서 젊은 여성이 내려와 문을 열었다. 그 길을 통과해야만 천가채에 오를 수 있다. 오르는 길에 붉게 핀 산다화(동백)를 볼 수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자 한참 만에야 관리소가 나왔다. 그 관리소에 앉아 마신 감미로운 차 한 잔에 선경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다시 1시간 30분을 더 들어가야 차왕수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길을 재촉했다. 구갑향정부에서 따라온 관리와 천가채 관리소 관리인 1명이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었다. 천가채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이 지역에만 높고 높은 고차수가 300여 그루에 이른다고 했다. 천가채로 가는 길목마다 이름을 부여했다. 그리고 높은 차나무들이 우리를 차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천하제일의 차왕수를 보다

1시 30분에 애뢰산 입구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5시가 다 돼서야 거령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차왕수에 이르렀다. 멀리서 차왕수를 보는 순간 차나무를 향해 한없는 감사를 드렸다. 2,700년을 살아온 이 차나무의 역사는 곧 차의 역사를 말해 준다. 기원전 7세기경 제나라 환공(桓公), 진나라 문공(文公), 초장왕(楚庄王) 등 춘추 오패가 중원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부터 이 차나무가 천가채 땅을 뚫고 나와 큰 숲 안에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육우의 《다경》에도 대차수에 대해 파산(巴山) 협천(峽川)에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는 차나무가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두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대차수는 지름이 3.2m 이상이고 적경은 적어도 1m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육우가 언급했듯이 윈난에 그런 고차수가 있는데도 지금까지 침묵한 까닭은 무엇일까. 천가채의 고차수는 1996년 11월 윈난농대 중국농업과학원에 보고되었으나 2007년에야 세계 최고의 고차수로 지정되었다. 그 뒤 윈난 쿤밍에서 천가채 야생 고차수와 차나무의 식물군락의 발견과 의라는 학술연토회가 열렸다. 애뢰산은 야생자연군락과 특대 고차수의 발견에 힘입어 천가채 고차수의 생태 환경, 차나무 식물군락에서 고차수의 식물학적 특징, 생태 적합성, 화학성과 고차수의 수령, 천가채 야생 고차수 군락과 고차수 발견의 의의 및 가치 등에 대한 과학적 논증이 진행되었다.

 

- <차의 세계> 4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11-04-08 오후 4: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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