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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조주 끽다거 기행 ⑤

 

남전사 옛터에서 울려 퍼진

차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마지막 헌다

 

최석환(본지 발행인)

 

남전과 조주를 찾아 안후이성으로 가다

 

츠챠취(喫茶去)의 자취를 따라간 구도 여행은 가는 곳마다 츠챠취의 향기에 흠뻑 빠져들게 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츠챠취를 이야기했다. 이처럼 후인들이 아직도 조주를 흠모하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이는 조주가 읊은 차 공안인 츠챠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일찍이 조박초 거사가 말한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다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낫다[空持百千偈不如喫茶去]’는 말은 츠챠취와 함께 천고에 변하지 않는 진리로 다가왔다.

선화가 야선 박정희 씨가 즉석에서 그린 조주 화상 속 연꽃 위에 차를 올린 뒤 김지영 다우가 합장을 했다.


2011년 2월 19일 조주의 고향 산둥성 린쯔시를 출발한 천하 조주 기행 순례단은 태산 영암사를 거쳐 4월 23일 조주가 남전을 만나 단박에 제자가 된 안후이성(安徽省)에 위치한 남전사를 찾았다. 우리 일행은 곧바로 안후이성으로 가지 않고 닝보에서 열린 2011 중국 닝보 차와 건강 학술연토회에 참가한 뒤 22일 일찍 닝보를 출발해 8시간을 달려 안후이성의 중심인 츠저우시(池州市)에 이르렀다. 전날 조주가 말년을 보낸 허베이성 스좌장에서 차와 건강 학술연토회 참가차 온 수만 선생과 반갑게 해후했다. 그날 밤 조주의 츠챠취 자취를 따라 순례길에 오른 경로를 말하자 놀라워하며 “처음 소식을 듣고는 단순한 기행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체계적 규모를 갖춘 순례인 것을 알게 되니 놀랍습니다. 중국인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최 선생의 혜안은 늘 놀랍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림선사(柏林禪寺)의 징후이(淨慧) 스님과 논의하여 허베이 백림선사에서 학술연토회를 겸한 헌다의식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 자리에서 2차 천하 조주 기행 깃발을 펼치자 <츠챠취> 잡지의 기자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번 2차 기행에서는 선화가인 야선 박정희 씨의 장엄한 선화 퍼포먼스 동작에 따라 저장임학원의 유학생 김지영 씨가 차를 우려낸 뒤 그림 속 연꽃 중심에 차를 공양하는 행사가 펼쳐졌다. 김 씨는 도예가 양구 씨가 한국에서 재현해 낸 정병으로 정성껏 차를 우려냈다. 그리고 서경호 보이차의 후원을 받아 남전사지에서 마지막 헌다례를 올렸다는 점에서 각별했다.

 

누워 계신 와불을 보았소

 

2월 19일 조주의 고향 산둥성 린쯔시를 출발한 조주 기행 순례단은 4월 23일에서야 안후이성 지주지구(池州地區) 동륭시(銅隆市) 동산현(銅山縣) 남전촌에 이르렀다. 조주는 제나라 땅인 린쯔시 용흥사에서 출가한 뒤 숭산의 유리계단에서 구족계를 받고 주류하다가 당시 마조의 법을 이은 남전보원 선사가 안후이성에서 선법을 떨치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몇 날 며칠을 걸어 안후이성 남전촌에 이르렀다. 어린 사미인 조주가 남전사에 이르자 남전이 비스듬히 누워 조주를 바라봤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서상원에서 왔습니다.”
“그래 상서로움을 보았는가?”
“서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신 부처는 보았습니다.”
그러자 남전이 일어나 물었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인가 아니면 주인이 없는 사미인가?”
“주인이 있습니다.”
“너는 주인이 누구인가?”
“첫봄이라고 합니다만 아직 춥사옵니다. 황송하옵니다만 노스님께서는 존체 건강하시옵소서.”
그러자 남전이 유나를 불렀다.
“이 사미에게 특별한 곳의 자리를 주도록 하라.”
《조주록》 <행장>에 나온 조주와 남전의 극적인 만남의 장면이다.
필자가 1998년 1월 처음 남전사지를 찾았을 때 이곳의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한 촌로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남전사지에 이르렀다. 그곳은 안후이성 츠저우지구 동륭시 은삼비진 남전촌에 있다. 노인을 따라 남전사 유지 곳곳을 찾다가 어렴풋이 조주가 남전을 만난 방장실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을 따라 방장실 뒤편 대숲을 걷다가 곳곳의 흩어진 탑신들을 발견했다. 남전사지 어디엔가 있을 법한 남전묘탑의 흔적을 찾는 것이 급했다. 일행들이 남전사 유지에 있는 동안 필자는 대숲으로 돌아가 뜻밖에도 남전묘탑을 발견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당시 <불교춘추>(1999년 4월)에 실린 <남전묘탑기>를 살펴보자.

남전사지에서 한참 떨어진 대숲을 헤치고 들어가 南泉之墓라고 크게 쓰여 있는 묘탑을 발견한 순간 필자의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주위는 전남 화순 쌍봉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남전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구산선문 중 사자산문을 일으킨 쌍봉도윤(雙峰道允, 798~868) 선사가 귀국 후 선법을 전해 간 곳이 쌍봉사가 아닌가.

그 남전묘탑의 발견 후 조주와 철감도윤 선사가 법형제라는 인연으로 <한·중우의조주고불선차일미기념비>(2001년 건립)가 건립되면서 조주 츠챠취라는 화두는 필자의 마음속 공안(公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안은 남전촌 곳곳에 흩어진 차나무였다. 차나무는 단적으로 조주 츠챠취를 연상케 했다. 필자가 남전사지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이곳이 조주가 츠챠취를 일으킨 발원의 땅이기 때문이다. 2003년 12월 26일 츠저우사범대(池州師範大)와 월간 <선문화(禪文化)>가 공동주최한 중·한 남전보원 학술연토회에서 필자가 ‘끊어진 선맥을 다시 잇는 것과 같은 감격의 순간’이라고 개막 선언을 한 것은 8년이 흐른 지금도 선연히 다가오는 일이다.
그러나 그 뒤인 2010년, 중국의 지인으로부터 남전사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륭시가 광산 개발로 마을을 이주시켜 남전사지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전촌 뒷산이 광산인 것이 화근이었다. 원래 남전사는 츠저우지구의 관할이었다. 그러나 광산으로 인해 남전사는 동륭시로 편입되었고 동륭시의 유력한 시멘트회사가 동륭시와 협의해 남전촌을 광산으로 개발하면서 남전사지는 사라질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남전이나 조주가 이 소식을 들었으면 지하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남전사는 문화혁명(1966~1976) 전까지만 해도 승원사라는 절터에 승려 한 명이 초암을 짓고 살았다.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승려는 어디론가 가 버렸고 흔적만 남아 있는 황량함을 통해 지금 남전사지가 처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 필자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남전의 선풍은 그렇게 꺼져 갈 수 없었다. 뜻있는 사람들이 시주하여 요사를 건립하고 불상을 모셔 다시 남전사가 되살아나는 듯했으나 동륭시가 광산 개발을 서두르면서 마을을 이주시키고 결국 지난해부터 광산 개발을 시작했다. 13년 전 무심코 지나쳤던 광산 운반 트럭이 이따금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앞을 가렸다.

 

선화와 차가 어울린 마지막 헌다

 

조주 영정을 담은 제2차 천하 조주 끽다거 기행이란 대형 현수막 아래 선화가 박정희 씨가 조주 화상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천하 조주 끽다거 기행 순례단은 23일 아침 일찍 츠저우를 출발하여 안후이성 동륭시 동산현 남전촌에 이르렀다. 그런데 간간이 물소가 논밭을 노닐 뿐 옛길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의 지도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전에 보지 못한 마을이 나왔다. 남전촌에서 이주한 마을이었다. 우리는 그 마을 앞에서 차를 세우고 마을에 들어가 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 남전사 유지가 어디입니까?”
“남전촌에 있던 마을이 이주하여 지금은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곳이 옛 남전사 유지입니다.”
“아직 유지가 남아 있습니까?”
“우리가 그곳에 살다가 마을이 폐쇄되는 바람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 노인의 말을 좇아 차를 몰고 남전촌을 찾아갔다. 그런데 옛길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물소를 몰고 논농사를 짓는 한 노인에게 남전사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은 손짓하며 말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옛 남전사 유지입니다. 그곳에 절이 있는데 지금은 스님이 가끔 오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따라 다시 차를 몰고 들어선 곳에는 산 전체가 허물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을 끝에 이르자 덩그렇게 놓인 건물이 있었다. 바로 남전촌 유지에 새로 건립된 시멘트 공장이었다. 공장을 지키는 사람에게 남전사 유지를 물으니 스스로 길을 안내했다. 대숲의 오솔길을 따라 남전사 유지에 이르니 탑묘 형태의 절이 나왔다. 남전사 복원을 위해 한국과 중국의 불자들이 시주로 건립한 것이다.
필자는 탑전의 법당에 나아가 향을 피우고 부처님 앞에서 간절히 삼배를 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 헌다 의식을 장엄하게 진행했다. 법당 옆에 조주 스님 상을 새긴 대형 천하 조주 끽다거 기행 현수막을 걸고 그 앞에서 선화가인 야선 박정희 선생이 천을 깔고 일도양단의 자세로 붓을 잡았다. 그 옆에서 유학생인 김지영 씨가 다소곳한 자세로 이번 행사를 위해 도예가 양구 선생에게 특별히 주문한 정병을 잡고 한국 녹차로 차를 우려냈다. 그 뒤에서는 필자와 언론인 공종원 씨, 투다헌 대표인 김윤태 사장, 오미정 박사, 이순자 다우가 반야심경을 염송했다. 선화도를 그리는 동안 검은 나비가 법당 주위를 빙빙 맴돌며 날아다녔다. 조주의 현신일까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 <차의 세계> 5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11-05-13 오후 2: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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