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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世界 茶人과의 茶談 ④│저우위(문화살롱 쯔텅루 대표)

 

문화살롱 쯔텅루에서

차와 인생을 말하다

 

최석환(본지 발행인)

 


대만 민주운동의 맹아기(萌芽期)에 쯔텅루(紫藤廬)는 문화의 중심지였다. 원래 이곳은 1975년 저우더웨이(周德偉) 교수가 아들인 저우위 선생에게 물려준 집이었다. 저우위 선생은 대만 민주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메이리다오(美麗島)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좌절과 실패감에 실의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둘 쯔텅루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쯔텅루는 천원첸(陳文○)의 반대 운동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루였고 실의에 빠진 강호인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런 까닭으로 대만 차인들은 스스로 쯔텅루를 문화살롱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곳이 문화살롱이 된 것은 1981년 저우위 선생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자연 정신의 재발견, 인물 정신의 재창조라는 이념하에 대만 최초의 다관으로 문을 열면서부터였다.  
쯔텅루라는 이름은 정원에 오래된 세 그루의 자등만생 식물이 있어 붙인 것이다. 쯔텅루의 설립자인 저우위 선생은 이곳을 차를 매개로 음악, 예술, 무용과 전통 예술이 어울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시켰다. 1995년에는 문건회위(文建會委)의 부탁을 받아 대만 주재 프랑스 파리문화센터에서 차와 음악의 대회를 열고 문화살롱으로서의 기능을 향상시켜 갔다. 쯔텅루는 점차 대만의 내로라하는 차 연구가들의 단골이 되었다. 지난 6월, 대만에서 ‘선·차·악’을 개척한 린구팡(林谷芳) 선생을 만났을 때 “저우위 선생은 대만 차 운동의 기수로 쯔텅루가 문화살롱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지난 2009년 12월 대만핑린포종차절 참가차 대만을 찾았을 때 중화동방예술학회의 왕슈주안(王淑娟) 회장으로부터 대만 차 운동의 기수 저우위 선생을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그와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쯔텅루에서 조우한 그는 2011년이면 쯔텅루가 창립된 지 30주년 되는 뜻 깊은 해를 맞는다며 갖가지 행사를 준비한다고 기뻐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2010년 6월이었다. 이 글은 지난 6월 쯔텅루에서 이루어진 그와의 잔잔한 다담을 재구성한 것이다.
쯔텅루의 아담한 차실 한편에서 찻자리가 이루어졌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차를 우려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한국에서 만든 백자다기로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30년 전 한국의 어느 차인이 선물한 것인데 순백의 마음처럼 차향 또한 감미로워지는 것 같아서 백자를 즐겨 쓴다고 답했다.
필자가 놀란 것은 일전에 만난 중국 저명 평다사 뤼샤오쥔(駱少君) 선생도 필자와 만났을 때 84년 한국에서 느낀 차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뗐는데 저우위 선생 또한 그랬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건너간 백자의 밝은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저우위 선생은 30년간의 차 인생과 철학을 잔잔히 풀어냈다.

밖에서 바라본 쯔텅루의 모습. 동서양의 형태를 모두 갖춘 건축물이다.

쯔텅루가 설립된 지 30년을 넘기니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1981년 개관했으니 2011년이 꼭 30주년이 됩니다. ‘자연 정신의 재발견, 인물 정신의 재창조’라는 슬로건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이곳 쯔텅루에서는 차를 매개로 음악가, 무용가, 전통예술가들이 서로 모여 토론하고 다담을 하면서 대만 다예를 다양한 형태로 개척해 나갔습니다.”

선생에게 천목다완으로 용정차를 우려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을 건네자 옆에 있던 부인 린후이펑(林慧峯) 여사가 답했다.
“사실 저희 남편이 천목다완을 알게 된 것은 1985년이었습니다. 푸젠성 앞바다에 침몰된 배에서 천목다완이 나왔는데 그때 저 천목다완으로 차를 한번 우려 마시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뒤 어렵사리 천목다완을 구하여 그 다완에 용정차를 넣고 차를 마셔 보니 차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마시고 있습니다.”
그는 이 방법이 남편인 저우위 선생의 독특한 음다법이라고 덧붙였다.

쯔텅루는 대만의 대표적 문화살롱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이 건물은 90년이 되었습니다. 원래 쯔텅루는 저의 부친이 살던 집으로, 그 집을 물려받아 문화살롱으로 만든 것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문화를 말하는 공간이 필요함을 느끼고 81년에 다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특히 대만 민주운동과 반대운동의 공간으로 자유학자의 집합 장소가 되면서 인문이 살아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70년대 들어 대만은 문화적인 지식이 개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대만의 문화, 예술인이 모이면서 쯔텅루가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선생은 차의 정신을 ‘정(正)·정(靜)·청(淸)·원(圓)’으로 제시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정(正)·정(靜)·청(淸)·원(圓)’이 4글자가 모두 내포하고 있는 정의는 다예(茶藝) 세계에서 한 명의 문화종사자가 진지하게 15년을 모색하여 승화시킨 이상(理想)입니다. 비록 작은 세계이지만 큰 세계에 의미가 깊게 영향을 끼칠 것임을 믿습니다. 제가 다예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이 다예 세계를 영조(營造)하는 데 전통 한문화(漢文化)가 천(天)·지(地)·인(人)의 사유방식에 대해 매우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차인(茶人)은 일체 존재하는 물건에게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생명의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다예 세계에서 같은 물건은 없으며 오직 공구(工具)이며 그것들은 자기 자신의 성격과 미감(美感)이 됩니다. 차인과 모든 존재하는 물건은 대화를 하며 동시에 물건과 물건 사이를 탐구하고 또는 물건과 환경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놀라운 관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오래된 항아리, 마른 가지, 꽃이나 분재, 탁자, 돌, 한 폭의 그림…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감상하고 기식(氣息)의 움직임… 하늘의 기운이나 마음에서 어떠한 음악을 듣고 어떤 차를 마시든 모든 것이 차세계의 하늘[天]입니다.”

30년 전 대만에 다관으로 처음으로 문을 연 쯔텅루.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대만의 음다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대만의 음다 습속(習俗)은 근 400여 년 동안 한족(漢族)이 푸젠(福建)과 차오산(潮汕) 지역(광둥 동북부) 일대로 옮겨짐에 따라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차를 심는 것과 제다업도 200년 동안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풍습으로 중국 서남의 쓰촨(四川) 지역에서 기원하였으며 3천에서 4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음다는 차를 약으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2천여 년 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다업은 양쯔강 중하 유역에서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약 1천 2, 3백 년 전 당나라 때 차를 마시는 습속은 이미 중국 남부에서 북부로 전해졌고 이때 신분이 낮은 특수한 문인(文人) 육우(陸羽)가 중국 내륙 4곳을 조사하여 천여 년 동안 중국인이 심은 차, 제다, 팽다(烹茶)와 품다의 예술을 정리하여 전 세계에서 최초의 다서(茶書) 《다경(茶經)》을 써 냈습니다. 그중 한 부분의 내용은 지금까지 상당한 계발성과 전범성(典範性)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후 천여 년 동안 차는 빠르게 동아시아 대륙의 모든 한족과 그 주변 민족의 생활과 문화에 퍼졌으며 그들의 생활 중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의약, 감각적 향유, 예술과 종교적 특성을 가진 음료가 되었습니다.”

 

- <차의 세계> 2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11-05-13 오후 3: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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