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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노차수들 



석천 (본지 편집위원)



“차문화가 전래된 이래 오래된 차나무에 관심이 높아졌다. 차산지를 조사하던 중 노차수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차나무의 천년 기념물이나 보호수 지정을 위해 사라져 버린 차나무의 실태를 조사했다.



차나무는 옮겨 심으며 자라지 않는다


‘차나무는 한 번 옮겨 심으면 다시 소생하지 않는다’는 옛 속담이 있다. 이 같은 말은 결혼 풍습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혼 예물로 차씨를 비단에 싸서 전하는데 한번 씨를 뿌린 뒤에는 옮겨 심으면 차나무가 다시 소생하지 않듯 ‘한 번 정혼하면 평생 섬겨야 한다’는 말과 일치한다. 그처럼 차나무는 옮겨 심는 것을 금기시했다. 2년 전 충남의 서천 식물원을 찾아갔다가 50여 년 전 서천의 독서당에서 옮겨 심은 차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00여 년 전 목은 이색(牧隱李穡)이 독서당에서 독서삼매에 빠지면서 독서를 즐긴 독서당의 앞뜰에 차나무를 심었다. 독서당은 오래전 폐허가 되었는데 서천 식물원의 김재완 원장이, 목은 이색이 심고 가꾸었던 4미터 크기의 노차수 한 그루 앞에 서 있었다. 평소 나무에 관심이 많던 김재완 서천 식물원 원장이 50여 년 전에 서천 식물원으로 옮겨 심은 것이었다. 우연하게 서천 식물원을 찾아갔다가 지난해 혹독한 냉해로 인해 차나무 줄기 일부가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전국 노차수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하나씩 죽어가는 노차수를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최근 쌍계사가 승가의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사찰 스님이 13년 정도 되는 차밭을 갈아엎고 콩밭으로 가꾸면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발단은 하동군 차시배지를 뒤로 하고 정금리를 중점 농업유산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이다. 쌍계사와 복잡하게 얽히면서 언론들이 차나무 수난 쪽으로 초점을 맞춤에 따라 뒤늦게 우리 차에 관심이 모아졌다.



차의 역사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데...


차문화진흥법이 통과된 이후 차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러나 본지가 〈잊혀진 한국의 차나무 기행〉을 연재하면서 농림부의 차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원예산업과는 색다른 주장을 펼쳤다. 요컨대 차나무 보존과 정책은 산림청이 오히려 근접하다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차문화진흥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여전히 차문화의 보존 정책은 먼길처럼 여겨졌다. 차 단체마다 한국 차문화의 역사성을 외쳐도 유전자원 유산인 차나무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데 차문화진흥법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고 있지 않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하나씩 사라져 가는 차나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작년 7월부터 시작한 차나무 기행에서는 첫 회에 하동 목압마을의 노차수를 돌아봤다. 그 나무를 작년 지방 도 지정물로 지정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잊혀진 한국의 차나무 기행〉이 연재되면서 전국 차산지로부터 ‘우리 지역에는 노차수가 있는데 한번 찾아와 달라’는 제보가 쏟아졌다. 그런데 국가나 차나무 소유자는 관심 밖이었다.



본지의 경우 독자적으로 차나무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한국 차문화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전국의 노차수를 조사하면서 차사가 하나씩 사라져 간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로 2000년대 초반 통도사(通度寺) 적멸보궁을 지켜온 노차수는 통도사 사원 정비작업의 일환으로 차나무를 적멸보궁 밖으로 옮겨 심으면서 고사되고 말았다.

두 번째 큰 사건은 경상남도 도지정물 제 264호로 지정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하동 정금회 도심다원의 천년차나무는 2010~2011년 사이 겨울 동해로 나무가지가 말라죽어 고사되고 말았다. 차계는 한국의 차나무 자원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했다.

세 번째는 70여 년 전 오가와(小川) 여사가 오차를 생산해 일본에 전승되어온 천원차(川原茶)가 수로 정비작업으로 인해 뿌리째 사라져 갔다. 천원리 차밭을 임대한 임대인은 차나무가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뿌리째 없애 버렸다고 했다. 그 밖에도 근세 항도 부산을 상징할 만한 부산 서대신동 산정농원에 높이 3.8m, 지름 2m나 되는 차나무 또한 산정농원이 매매되면서 농원의 주인이 차나무를 집 앞뜰로 옮기면서 고사되었다.

이 차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농원 주인인 이범열 사장은 “약 50년 전 아버님께서 처음 농원을 개간한 이래 차 씨앗을 뿌린 것이 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처럼 역사성이 깊은 차나무가 하나씩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산주(山主)가 차나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노차수들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지난 4월 남원의 보련암 옛터를 찾아갔다가 매월당 김시습의 자취가 남아있는 노차수 또한 차나무 일부가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었다. 산주는 지천에 있는 차나무가 1년을 지나면 가시덩굴에 가려 출입이 어려워 차나무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의 차산을 조사하면서 지금이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차나무를 천 년의 자원으로 보존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한국의 오래된 노차수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 현상은 ① 겨울 동해(凍害)로 얼어 죽는 경우 ② 차나무를 옮겨 심는 경우 ③ 산주의 무관심에 의한 경우 이 세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일어나고 있다. 본지가 차나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국 차나무의 조사에 서로 나서겠다는 차계(茶界)와 산업계의 소리를 들었다. 사실 20년간 차나무를 조사하면서 독사나 뱀들의 위험에도 한국 차문화를 살리려는 염원에서 한국의 차산 조사가 시작되었다



지리산 피아골 단주차 탄생


한국의 오래된 차를 말할 때는 대렴을 맨 먼저 거론한다. 차시배지를 놓고 구례와 하동은 서로 자기 지역이 차시배지라고 첨예한 대립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지리산 화엄사의 노차수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화엄사 긴 대밭이 대렴의 차 전파지라고 구례 사람들은, 이에이리(家入)가 《조선의 차와 선》에서 언급한 이래 강한 주장을 펴고 있다. 그 뒤 한국의 차산을 조사하다가 곡우가 다가왔다. 불현듯 20년 전 석산제다의 손윤기 사장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 오래된 차나무가 있는데 바위틈에 있어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 말을 떠올리면서 손 사장에게 연락을 취해 이번에 피아골 차나무로 차를 법제해 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차사업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가 필자의 설득에 마음을 열어 5월 12일 극비리에 지리산 피아골의 차로 차를 법제했다. 이른바 단주차였다. 중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한국에서 처음 법제했다. 극비리에 탄생한 단주차에 관한 소식이 본지 6월호에 공개되자 전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왜! 진작 우리는 단주차를 만들지 못했느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2021년 곡우를 전후하여 전국의 고차산을 뒤져서라도 단주차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단주차의 특징은 찻잔을 잡는 순간, 강하지 않게 은은한 향기가 오감(五感)으로 느껴졌다. 지리산 피아골에서 완성된 단주차는 차를 잇게 한 흥덕왕릉에 공차한 이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사라져 가는 노차수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잊혀진 차나무를 조사하다가 뜻밖에 기대승(奇大升) 가(家)의 후손을 만났는데 집 앞의 차나무를 바라보면서 “선친이 살아있을 때는 저 나무가 가치가 있지만, 선친이 돌아가시면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릴 것입니다. 저 차나무는 사업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라고 그 후손이 뼈아픈 말을 건넸다.

한국의 차가(茶家) 사람들은 자신 있게 차를 말하지만, 하나씩 사라져 가는 노차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1970년대 중반 구례 화개, 진주 전역에서 차나무가 사라지고 밤나무로 개종한 사실을 접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남녘의 차산을 찾아가면서 노차수들이 산주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접했다. 장성, 고흥, 순창, 담양, 구례, 화개, 강진, 고흥 등 전국의 크고 작은 차산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차나무를 볼 때면, ‘대체 한국 차의 역사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데 무슨 차문화인가’ 하는 자문자답을 하게 된다. 사실 차산을 찾게 되면 뱀, 독사, 맹수들의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한국 차의 역사성이 회복되길 염원해 본다. 

기사 작성일 : 2020-09-28 오전 1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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