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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문화의 기원 ⑭│경산에서 화개를 본다 Ⅱ

 

우리 차 제다의 아버지 잭살 영감

 청파 조병곤


최석환(본지 발행인)


지금까지 화개 덖음차 원류가 일본 큐슈(九州)를 통해 화개로 들어왔다고 보았다. 이는 김복순 가(家)를 통해 막연히 일본 큐슈 지역에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반전되고 말았다. 지난 6월 9일 경산차를 들고 화개를 찾던 날 놀랍게도 두 지역의 차맛과 탕색이 거의 일치되는 점을 발견했다. 심평을 연구해온 동신대학교 추민아 선생은 광주에서 화개로 내려와 품다 과정을 지켜보면서 두 차맛이 일치함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차는 왜 지금껏 침묵만 지키고 있었는가. 화개 차의 제다법은 그동안 심증만 갈 뿐 정확한 근거가 없어 제자리걸음에 머물렀다. 필자가 이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경산 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오래 전부터 싹틔워 왔기 때문이다.
7년 전인 1999년 봄, 경산사를 찾아 경산차 맛을 본 뒤 어디선가 맛본 듯한 차맛임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그 뒤 <차의 세계>를 창간하면서 더욱 차에 몰입하게 된 필자는 그 차가 어렸을 때 하동 지역에서 맛본 차맛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됐다. 일찍이 하동지역에서 상비약으로 비전되어온 ‘잭살’이란 차의 맛이 필자는 궁금해져만 갔다. 그러던 중 2003년 5월 화개의 차인으로 소문난 한 여인으로부터 놀라운 말을 들었다. 몇몇 다우들과 빙 둘러 앉아 차를 한 잔씩 들다가 자연스럽게 그녀는 “잭살 영감을 아십니까?”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뒷말을 계속 이어갔다. “잭살 영감은 화교 출신으로 1940년대에 화개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차를 만들었지요. 그러나 후손이 없는 까닭에 잊혀져버리고 말았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에 정통한 이로 이광섭 선생이 있는데, 그가 ‘잭살 영감’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날 밤 늦게 이광섭 씨를 찾아갔다. 단도직입적으로 잭살 영감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우리 일행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이광섭 씨는 “알고, 말고요. 청파 노인은 우리 화개 지역에 차맛 내는 법을 가르쳐 문명을 열었던 분이셨지요. 그는 화교 출신이 아니라 해방 전 중국에 머물렀다가 귀국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40년대 중반 쌍계사로 들어와 절에 몸을 위탁하면서 오룡차와 작설차를 만들었던 분이지요. 그는 내가 듣기로는 학식 높은 기인의 풍모를 지닌 지식인이었습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과 교분이 있어 봄에 만든 차를 청와대에 갖다주고 1년 양식을 타온 적도 있었습니다. 청파 노인은 붓글씨도 잘 써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했답니다”라고 흥분된 어조로 대답했다.
마치 어제 일처럼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광섭 씨는 오늘날 화개 덖음차의 원류가 청파라는 것은 민감한 문제라서 더 이상 논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툼한 봉투 속에서 청파 노인이 썼다는 한시 한 편을 꺼내놓았다. 청파 노인이 쌍계사에 머물 당시 주지였던 금송 스님의 상좌 한 사람이 이 노인을 방문한 뒤 적은 글이었다.

花改雀舌唐種花 화개 작설은 당나라 종자에서 꽃피웠지만
亡國再建復興材 망국을 다시 일으키는 제목이 되리라
孫開茶葉長來財 대대로 피어나는 찻잎은 오래도록 잭살이 되어
財源國難一助事 그 잭살이 나라의 어려움을 도우리라.

화개 석문(石門) 사이에 사는 할머니들 중에서는 아직도 ‘잭살 영감’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처럼 잭살 영감은 화개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몇 해 전 화개에 사는 정 모 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슨 왜 ‘작설’을 ‘잭살’이라는 사투리로 부르는가였다. 뒤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여인은 ‘잭살’이란 차를 만드는 여인이었다. 그처럼 화개 차농들은 잭살 영감의 자취를 감추려 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잭살 영감은 화개 지역 토호들의 입방아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잭살 영감이 본지에 보도되자 그 말은 자취를 감추어버린 상태였다.
화개 지역의 차 만드는 곳은 지금 1,916곳에 이른다. 청파 노인이 오기 전인 1940년도에는 쌍계사에서조차 차를 법제하지 않았다. 화개 지역에 전설처럼 떠오르는 말 가운데 하나가 ‘잭살’이다. 필자의 어릴 때 기억으로는 감기가 들면, 잭살 나무의 찻잎을 한 움큼 따서 대추와 함께 가마솥에 넣어 우려 마시고 땀을 빼면 어지간한 고뿔은 씻은 듯이 나았었다. 그 원천이 청파 노인에게서부터 비롯되었다. 때문에 화개 지역의 차 만드는 사람은 청파 노인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작 청파 노인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한 다우의 증언처럼 김복순의 덖음차가 경산의 덖음차와 거의 일치하면서 청파 노인이 전면에 등장한 계기가 되었다. 조병구, 조병린으로도 알려져 왔지만, 조병곤이 청파 노인이었다. ‘잭살 영감’은 그의 아호이기도 하다. 그렇듯 잭살 영감이 화개차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의 환영을 끌어낸 이는 바로 경산이었다. 경산의 차맛이 화개 지역과 일치하면서 단박에 청파 노인이 만든 차가 새삼 떠오른 계기가 되었다.

화개의 덖음차 경산과 같다

지난 9일이었다. 경산차를 들고 화개를 찾던 날 차인으로 소문난 한 다우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경산차와 화개차를 번갈아가며 우려냈다. 먼저 경산차 맛을 보았다. “어찌 이렇게 화개차와 같습니까. 뒤끝이 씁쓰름한 화개차에 비해 단맛이 나는 것 빼고는 거의 일치합니다.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어 화개차를 우려냈다. 첫 잔 경산차와 거의 같았다. 우리는 매우 놀랐다. 중국에서 품평을 연구해온 추민아 씨도 화개와 경산의 차맛이 같음을 보고 놀라워 했다. 이렇듯 품다를 통해 화개차와 경산차의 베일이 전면에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청파 노인을 말하는 사람 중 이광섭 씨 외에 두 사람이 거론된다. 청파 노인의 장례를 지낸 박 노인과 젊은 시절 그를 따르던 박성동 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을 통해 청파 노인의 면모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어 석문마을 들머리에 살고 있는 박 노인을 찾아갔다. 박 노인은 32년간 쌍계사 재무 스님으로 있었다. 그는 법명보다 쌍계사 재무스님으로 통한다. 속명은 박학봉이다.
그의 첫 말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청파 노인이 오기 전 화개 사람들은 차가 무엇인지 몰랐지요. 그는 화개를 차 천지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또한 마을 아이들을 모아 놓고 한문을 가르치기도 했었지요.”
그의 말을 증명하듯 1918년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에 소장된 쌍계사 약사에는 차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를 보아 청파 노인이 1940년 쌍계사로 들어오면서 차의 신세계를 열었다고 보인다.
“청파 노인의 차 만드는 방법은 아홉 번 비비는 구증구포였습니다. 가마솥에서 완전히 말려서 나왔지요. 처음 화개에 왔을 때 차가 무엇인지 모르는 데다 차가 안 팔려 해우소에 쏟아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화개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기가 만든 차가 최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청파 노인의 공적을 아는지 모르겠소. 그 분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사라져 가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일이죠.”
박 노인이 말했다. “그것이 역사 아니겠습니까.” 청파 노인이 타계한 지 30년이 지난 94년 2월 미국에 사는 두 딸이 나타났다. 큰딸의 뜻에 따라 유골을 수습하여 화장해 두었다. 지금 차 시배지에 있는 콘도 주변이 당시 청파 노인의 무덤 자리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분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두 딸은 자신의 혈육인 아버지의 행적이 영원히 남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세월 탓에 청파 노인의 기록은 점차 잊혀져 가고 말았습니다. 또 청파 노인을 기억해내는 사람 중 박성동 씨가 있습니다. 그를 서울에서 만나 청파 노인의 또 다른 면모를 들었지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쌍계사였습니다. 그때가 1950년 말이었죠.”
박성동 씨가 증언했다. 해방이 될 무렵 한국에 나온 청파 노인은 쌍계사로 들어가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청파 노인이 오기 전 화개에서는 차를 만드는 이가 없었다. 또한 청파 노인은 쌍계사 대웅전 뒤에 차밭을 가꾸어 그 차를 따서 법제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드는 차는 구증구포로 솥에서 처음과 끝을 모두 처리했다. 이런 중국식 제다법을 화개에서도 그대로 고수했다. 청파 노인이 떠난 지 47년 만에 경산의 차와 화개의 차맛이 일치됨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박성동 씨의 주장처럼 청파 노인이 만든 차가 중국의 차와 같음을 그도 증언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화개의 덖음차가 큐슈에서 화개로 전래됐다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박학봉 노인은 김복순 씨도 청파의 차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보면 화개차는 청파가 씨앗을 뿌려 오늘까지 이어져 왔음이 드러난다.
40년대 말 화개골에 전설처럼 나타나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쳤던 청파 노인의 승속을 막론하고 존중해마지않는 것은 그가 차 외에도 한학을 가르쳤고, 일필휘지로 많은 글을 남겨 유명을 떨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늘 “화계에 차 천지가 열릴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가 떠난 지 47년만에 화개의 덖음차가 전면에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화개사람들은 우리 차 제다의 아버지 청파 노인에게 차를 알려 준 고마움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화개차의 전통을 되찾는 길이다. 수없이 ‘잭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 말을 ‘잭살 영감’ 청파 노인이 만들었다. 화개에 차 천지를 연 청파 노인은 우리 덖음차를 있게 한 제다의 아버지로 높이 받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차의 세계》2007년 7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07-03 오후 3: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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