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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차문화 ②


고려시대 선종사찰禪宗寺刹

차문화茶文化(2)


원행(가연차회 대표)

 

② 잔탁(盞○)
잔탁은 잔과 잔 받침을 의미한다. 특히 여기서 이야기 하는 잔탁은 높은 굽 받침이 있는 찻잔을 말한다. 현재는 ‘탁잔’이라는 용어로 불리고 있다(이하 잔탁으로 통일). 그럼, 고려시대에는 어떤 찻잔과 찻잔 받침을 사용하고 있었을까? 서긍의 《고려도경》 기명(器皿) 다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또 다구를 비교해 보면 금화오잔, 비색소구, 은로탕정은 모두 중국의 제도를 본받았다[益治茶具金花烏盞翡色小○銀爐湯鼎皆竊效中國制度].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비색소구가 청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밝혀왔다. 그러나 금화오잔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힌 글을 볼 수 없다.
금화오잔은 어떤 것일까? 본인은 금화오잔이 송나라의 천목이나 그것을 흉내낸 고려 흑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송나라의 천목찻잔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그중에서 금화오잔으로 불릴만한 것으로는 유적천목(油滴天目)과 대피천목(玳皮天目)을 들 수 있다. 유적천목은 검은색이나 푸른색의 표면에 금빛이나 은빛의 기름방울 비슷한 문양을 가지고 있다. 또 대피천목은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은 문양이 있다
고려의 흑유 중에 금화오잔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찻잔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개인 소장의 전 봉업사지(奉業寺址)출토 고려시대 흑유찻잔과 일본 안택(安宅) 컬렉션 소장의 고려 흑유찻잔이 서긍이 말한 금화오잔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고려시대 중국의 송나라나 일본에서는 옻칠한 찻잔 받침에 천목이나 백자찻잔을 올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의 여러 사찰 터에서 천목찻잔 파편이 발견되었고 사찰 터가 아닌 곳에서도 천목찻잔이나 그 파편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천목찻잔 파편이 출토된 사지(寺址)로는 부여 왕흥사지, 안성 봉업사지, 여주 원향사지를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충남 서산시 원북면과 대전시 가오동에서도 천목찻잔이 출토되었다. 개성의 고려박물관에도 다수의 천목찻잔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많은 수의 천목찻잔이 고려에 유입되어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익산 미륵사지, 안성 봉업사지에서는 송나라의 백자찻잔이 출토되었다. 특히 천목찻잔 파편과 송나라 백자찻잔 및 고려 흑유찻잔이 안성 봉업사지 한 절터에서 출토 된 것이 흥미롭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고려시대 사찰에서는 천목잔 또는 천목 계통의 흑유잔[金花烏盞]과 백자 및 청자[翡色小○] 잔을 찻잔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루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잔탁

가루차용 잔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안동 태사묘 소장의 옻칠잔탁이 있다. 이 잔탁은 찻잔과 찻잔 받침을 나무로 만들고 옻칠을 한 것으로 고려시대 가루차를 마실 때 사용하던 잔탁의 모양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태사묘 소장의 잔탁은 찻잔과 찻잔 받침이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대부분의 가루차용 잔탁은 나무로 만든 찻잔 받침 위에 천목이나 고려 흑유, 백자, 청자로 만든 찻잔을 올려서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찻사발로 추정되는 유물은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에게서 많이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찻잔 받침은 나무가 가지는 한계성으로 인해 현재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은 태사묘의 것이 유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탕(茶湯)을 마실 때 사용하는 잔탁

찻잔과 찻잔 받침을 모두 도자기로 만들고 찻잔 받침의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많으며 높이는 낮은 편이다. 찻잔은 가루차용 찻잔에 비해 조금 작고 가루차용 찻잔이 직선적인 형태를 띠는데 비해 부드러운 곡선을 띠고 있으며 찻잔의 굽은 낮거나 없는 것이 많다.
현재 유물로 많이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 진사채잔탁과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원(東垣) 기증의 청자상감국화문잔탁을 들 수 있다. 특히 동원 기증의 청자상감국화문잔탁은 고려 공민왕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위기도(圍碁圖)〉에 보이는 뚜껑 덮인 찻잔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전 공민왕(傳 供愍王)의 그림은 고려시대 차문화에 대한 자료가 빈약한 상황에서 잔탁이 찻잔으로 사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네 명의 선비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주시하고 있는 그 옆에 동자가 손에 찻잔을 들고 서 있다. 아래쪽에 또 한명의 동자가 퇴수기로 보이는 항아리를 비우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차의 세계》2007년 9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09-13 오전 10: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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