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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기행─산청요 민영기

 

이 시대, 이 땅에서만 나는

도자기  이도다완井戶茶碗

재현을 위한 도예가의 인생

 

이정화(본지 기자)

 

조선에서 가져간 도예기술은 일본을 도자기 강국으로 만들었고, 조선 도공이 빚은 막사발은 일본 다도의 정신적 흐름을 형성시켰다. 임진왜란은 이 땅의 도자기 역사마저도 황폐하게 만들고 그 맥을 끊어 놓는 듯했다.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장되거나 소멸된 도자기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고 있다. 일본에서 국보급으로 칭송되고 있는 조선 막사발의 출처를 둘러싸고 그것에 대한 관련 학자들의 분분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인이 빚은 막사발이 일본 다도문화의 뿌리가 된 것을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속에 조선 도자기의 정신과 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 정신이 깃든 막사발, 일본인이 가져간 도자기를 일본인보다 더 잘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으로 30여 년 산청에서 나는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 온 도예가가 산청요 민영기(閔泳麒) 씨이다
.


분청사기에서 조화기법이 갖는 생략 그리고 여백의 美

 

도예가 민영기씨가 관심을 갖고 전력해 온 것은 백자, 청자의 고운 빛깔과 선의 아름다움이 아닌 분청에서 나오는 투박함, 그리고 그 투박함에서 나오는 생략과 여백의 미(美)다. 그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조선의 도예기술을 한국인에게 전수시키려 마음 먹은 일본의 5대 도예가 나카자토 다로우에몽의 제자로 5년간 일본에서 도예기술을 익히고 1977년 한국에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명맥이 끊긴 타날기법(打捺技法: 나무판으로 도자기 안쪽과 바깥쪽을 두드리며 성형하는 조선 자기의 전통 제작법)을 일본인 스승에게 배운 그는 오히려 ‘나카자키식’ 조형감각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은 스승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자신을 더 채워 넣음으로써 이루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일본인에게 배운 조선의 고유 기술을 습득하고 그 토대 위에 우리의 옛 도자기를 새로운 스승으로 삼아 그는 오랜 기간을 연구와 습작에 쏟았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옛 가마터를 다니며 눈에 익히고 옛 도자기를 토대로 그는 ‘있는 그대로를 모사하는 전승이 아닌 한 단계 더 나은 모습을 보이는 전통을 창조’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입문 10년 만에 1983년 ‘전국관광민예품경진대회’에서 상공부 장관상을 수상하게 되고 이듬해 서울 롯데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공인받는 계기가 된다. 경기대학교 석좌교수인 정양모 교수는 ‘두드리는 기법에서 얻어지는 항아리의 양감과 입과 굽의 형태에 힘을 부어 넣어 조형적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고 치밀한 문장은 대담한 생략과 재구성으로 여백을 살려 조화시키는’ 그의 작품세계를 위한 힘이 되어 주었다.

조선의 도자기 이도다완 재현에 대한 열정

 

민영기씨는 30여 년 도예인생의 절반을 이도다완의 재현에 바쳤다. 7년간 빚어낸 이도다완이 7만여 점이 넘는다. 0.1m에서도 중품과 명품이 오가는 이도다완에 대한 집념은 조선 도공이 빚은 이도다완을 일본인보다 더 잘 만들겠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도의 재현을 위해 일본을 오가며 국보로 지정된 실제 작품을 보며 마음속에 새기며 감각을 익혀 왔다. 웅천 등 각지에서 발견되는 사금파리들도 그의 작품 제작에 원형이 되었다.
7년의 이도다완의 재현을 위한 노력은 1996년 5월 일본 도쿄의 고주쿄 화랑에서 가진 ‘이도다완 초대전’을 통해 현지의 도자기 전문가들과 언론의 호평을 얻게 된다. 일본 최고의 도자기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도쿄국립박물관 명예관장인 하야시야 세이죠 관장은 그의 작품을 ‘기(氣)가 들어가 있는 이도다완’이라 칭하였다. 기가 들어가 있는 이도다완은 차를 마실 때 향과 맛을 더해 준다.
하야시야 세이죠 관장은 그의 이도 재현을 위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공로자다. 정양모 교수와 그의 요장을 방문해 일본인이 못 만든 이도다완을 만들어 주기를 당부하며 그를 격려했다. 옛날 솜씨로 만든 민영기씨의 이도다완은 ‘조선 찻잔 400년만에 재현’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는 “일본인보다 더 나은 이도다완을 만들겠다는 마음마저 버렸을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7년의 이도다완 이후 5년의 세월은 우리 선조가 만든 도도야다완 재현을 위해 노력했다. 도도야다완은 이도다완에 비해 화려한 색감을 가지고 있다. 
“그릇의 좋고 나쁨은 비례에 있습니다. 비례가 얼마나 좋고 나쁘냐에 따라 작품이 결정됩니다. 너무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되는 것이 도자기의 아름다움입니다. 조선시대 도자기는 비례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순리를 따른 편안하고 당연한 것이 조선시대 도자기의 아름다움입니다. 소박한 아름다움의 깊이를 조선 도공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도다완은 형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맛이 들어가야 합니다. 도자기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에 따라야 합니다. 손끝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자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생활 속에서 숨쉬는 가식이 들어가지 않고 순수하게 대답하는 것. 일본인들이 조선 도자기를 극찬한 것은 그 속에 기(氣)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찾은 것은 조선 도공의 무심(無心)이었다. 욕심도 어떤 의도성도 없이 마음에서 빚어진 작품에서 마음이, 기(氣)가 살아 숨쉬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이런 마음이어야 비로소 일본인이 못 만드는 그릇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잡은 터의 토대 위에서 후손들이 좋은 작품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좋은 도자기 만들겠다는 생각이 그의 바램의 전부였다.
제13회 경남 공예품경진대회 최우수상, 제13회 전국 공예품경진대회 상공부장관상(1983). 부산일보10인전 초대출품(1986), 일본 동경 한국대사관 문화원 초청 전시회(한일 교류전), 한국 현대도예 유럽 순회전 출품(1991), KBS-TV “한국의 미” 분청사기편 방영(1992), 93대전 엑수포 “임란 400주년 한국의 도자기 비교 뒤향전” 출품(1993), 한국 현대도예 30년전 출품(1994), 핀란드 한국 도예 비엔날레 출품(1995), 이도다완 개인전(일본 동경 壺中居 갤러리: 1996), 세계도자기 엑스포 2001 경기도 출품(2001)을한 바 있다.
어려운 작업이고, 고통스러운 삶이 도예가의 생이다. 숙명처럼 아들인 민범식씨가 그의 뒤를 묵묵히 따르고 있다. 70만 개를 만들어도 자신은 조선시대와 같은 도자기를 못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웅천에서 발견된 자완의 파편들은 모양이 저마다 다양하다. 그만큼 조선 도공들은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 것이라 말한다. 그런 노력이 현대 도예가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리라. 재현의 의미란 내면으로 들어가 깊이가 있고 맛이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참고로 하는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어느 시대고 비례감각이나 맛은 같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도자기를 빚을 따름이다.

《차의 세계》2003년 2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09-13 오전 11: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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