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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길을 따라 ⑤│진감 국사 비명에 적힌 ‘한명’에 담긴 뜻

한차漢茗를 진공進供하는

                          자가 있으니…

석천(본지 편집위원)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삼신산 자락 쌍계사 경내에 사산비명(四山碑銘) 중의 하나인 ‘진감국사 대공탑비(大空塔碑)’가 서있다. 신라 말기의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인 최치원(崔致遠)이 찬(讚) 한 이 비명에 ‘한명(漢茗)’이란 글이 남아있어 우리 차사(茶史)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 귀중한 글은 차계 밖으로 밀려났다. 이유인즉 차인, 비차인 가릴 것 없이 그 글에 담긴 뜻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한명’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진감국사대공탑비``에 새겨진 한명(漢茗)이라는 글씨.
신라 흥덕왕 때였다. 대렴(大廉)이 당나라에서 차종(茶鍾)을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뒤 비로소 우리 차문화가 토착화되었다고 말해왔다. 이 말은 불경에서 나온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하는 말처럼 대렴의 차종 역시 차를 이야기할 때 맨 먼저 거론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그 차종을 어느 곳에 심었느냐가 문제점으로 거론되었다. 게다가 대렴의 성씨가 대씨인가 김씨인가를 놓고 해묵은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다. 그뿐만 아니라 대렴 차종의 중국 절강성 천태산(天台山) 귀운동(歸云洞) 이식설이 밝혀지면서 다시 대렴의 차종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차문화의 정수 ‘한명’에 담긴 뜻

차의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순간마다 매우 기뻤다. 그것은 원문을 통해 살펴본  심미안적 안목의 부재에서 온 것이다. 우리 차인들은 과연 몇 사람이나 쌍계사 경내 ‘한명’의 글을 살피려 하였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동방의 보살로 추앙 받아온 진감 국사 혜소(慧昭, 774~850), 쌍계사 대웅전과 마주보는 그의 비는 비명 속 ‘한명’이란 글과 함께 차의 성지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진감 국사가 말씀하시길 “나는 그 냄새가 어떠한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다만 마음만 경건히 할 따름입니다”라고 했다.
한차(漢茗)를 진공(進供)하는 자가 있으니 땔나무로 돌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가루로 만들지 않고 끓이면서 다시 말하길 “나는 그 맛이 어떠한지 분별하지 못한다. 다만 뱃속만 적실뿐이다”라고 하였다.
진감 국사는 평소에 범패를 잘하였는데 그 소리가 금옥과 같았다. 구르는 곡조에 날리는 소리가 상쾌하면서도 슬프고 극진하여 능히 천상계의 모든 신불로 하여금 기뻐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진감 국사는 차 뿐 아니라 범패에도 일가를 이루었던 사실로 보아 한국 차사에 중요한 인물로 각인된다.

‘한명’, ‘명선’으로 거듭나다

진감 국사의 한명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었을 것 같다. 진감이 말씀한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차를 끓여 마시는 전통은 초의의 《동다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리산 화개동에 차나무가 사오십 리에 걸쳐 자란다. 우리나라 차나무의 자생지로 규명한 화개동 옥부대 아래 칠불선원(七佛禪院)에서는 그곳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항상 찻잎을 늦게 따서 땔감 말리듯 말려 솥에다 시래기를 끊이듯 삶으니 색은 탁하며 붉고 맛은 몹시 쓰고 떫은 차를 만들었다.” 초의 선사는 그런 모습을 보고 “천하에 좋은 차가 속된 사람들의 손에 더렵혀진다”고 말하였다.
그처럼 진감의 다선을 칠불선원 스님들이 이어갔다. 만드는 제조법이 신라 때와 같다는 것이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그 뒤 청파(靑波)가 나와 마치 화개차는 백가쟁명(百家爭鳴)하는 차의 신세계가 열린 것 같다. 그때가 50년대 초반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화개골은 차의 성지답게 뛰어난 다승이 많이 배출되었다. 만허 스님도 그 중의 하나였다.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가 만허(晩虛) 스님을 만나 중국의 용정차(龍井茶)보다 낫다고 극찬하였다. 만허 스님은 쌍계사 육조탑 아래에 주석하면서 제다를 공교히 하여 차의 달인이 되었다. 추사는 만허 스님을 만나면서부터 차 삼매에 빠져들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명선이 우연히 쓰여진 것은 아닌 것 같다. ‘한명’과 ‘명선’의 만남은 한국 차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옥보대 아래 운상선원. 진감의 뒤를 이어 차를 만들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차 시배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

차가 문화의 정점이 되면서 하동 화개의 차 시배지와 구례의 장죽전을 놓고 구례와 하동은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그러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매번 그러한 것처럼 화개 차농들의 생각은 여전히 태평세월 인 것 같았다. 이유인즉 나만의 차는 시장 경쟁력과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림부가 지정한 1999년 한국 수제 녹차 명인에 박수근 씨를 선정했고 뒤이어 2006년에는 김동곤 씨가 우전차 명인에 선정되었으니 이름 그대로 명인을 배출한 고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달 하순경 박영일 경상남도위원과 몇몇 차인 그리고 국악인들이 함께 우리 차의 일번지인 화개를 찾았다. 화개 들머리의 차 시배지 기념비가 우리를 반겼다. 단박에 여기가 중국에서 가져온 차씨를 파종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도 차 시배지의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지리산으로 파종하니 차문화가 발전되어 갔다고만 언급했을 뿐이었다.
1981년 차인회가 건립한 ‘김대렴비’가 시배지 한복판에 서있다. 원래 이 비석은 쌍계사 경내에 이르는 골목에 있었는데 시배지를 정비하면서 옮겨왔다. 이는 대렴의 성씨가 대씨인가, 김씨인가를 놓고 혼선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비석이었다. 대렴이 차씨를 가져오기 이전에도 이미 신라 흥덕왕보다 200년 앞선 선덕왕 때 차가 성행했었다. 지금 다시 차가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정읍 구례, 화개, 악양, 사천과 전남에서 경상도에 이르는 남녁의 산천 곳곳에 차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박 위원의 말처럼 물밀듯이 밀려오는 외래차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달 중국산 재첩이 하동산으로 둔감하면서 하동 재첩은 대중 곁을 떠나버렸다. 다른 차 또한 재첩 파동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마침 한밭 제다의 이창영 사장을 만났을 때, 그는 하동차의 브랜드는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유인즉 하동의 연간 500톤에 이르는 생잎은 천여 명의 제다인이 각자 각개전투식으로 판매망을 이루고 있어 별 걱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본지에서 인터뷰한 농림부 전 채소과장인 여인홍 씨의 말을 곰곰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차농 스스로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견해가 바로 그것이다. 각개전투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화개 차농의 자신감을 보면서 정부와 차농의 대조적인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화개촌 밖으로 벗어난 차의 세상은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세계적 메이저 기업들은 속속 한국 차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해오고 있다. 또한 세계는 지금 유기농법으로 가는데 화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또한 기술개발은 어느 정도인지 하동군의 정책을 묻고 싶다. 당신들은 잊었는가. 50년대 초 청파 조병곤이 처음 씨앗을 뿌렸던 눈물겨운 차 사랑과 70년대 초 김복순 씨의 덖음차 제조의 밑거름 위에서 화개차가 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아직까지 김복순씨가 만든 덖음차 제조법이 일본 큐슈와 어떻게 다른지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지금 세계 차 환경은 변화하고 있다. 차농 스스로가 변화할 때 비로소 야생차 일번지의 자부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농푸산취안사(農夫山泉)가 이영애를 광고모델로 스카웃한 점을 보았다. 한국의 경우 하루녹차의 한예슬, 17차의 전지현 등 인기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차를 대중화시키려는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화개 사람들은 우리 차의 역사가 화개골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한명’에 담긴 뜻을 되새기면서 야생 명차의 전통을 이어 세계의 차와 겨루어야 한다. 그런데 어두운 그림자 드리우고 있으니 웬일인가. 그 어둠을 떨치고 유기농법에 의한 야생 명차의 전통을 다시 이어가자. 그것이 하동차의 희망이다.

《차의 세계》 2007년 3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04-04 오후 12: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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