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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한국 차문화의 기원 ⑤ - 수제차 제다법 과거와 현재

 

한국 전통 제다비법은 열탕이었다

 

석천(본지 편집위원)

80년대 초반 우리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하동땅을 찾았을 때다. 당시는 차를 파는 찻집이래야 한두 집에 불과했다. 차 만드는 공장은 홍소술의 화개제다와 조태연가의 방산다장(方山茶庄) 두 군데 뿐이었다. 25년이 지난 오늘 화개는 차세상이다. 모두가 차박사요 차의 달인들로 차를 만드는 곳이 200여 곳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80년대 중반 화개천 다리를 건너 방산다장을 찾았을 때 김복순(1992년 작고)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양은 주전자에 찻잎을 한 움큼 넣고 펄펄 끓는 물을 부어 차를 우려냈는데 그 맛과 향기가 오랫동안 입 안에 맴돌았다. 25년 전 화개의 다풍이었다. 차에 미처 눈을 뜨기 전, 차가 무엇인지 모르던 시기였다.
80년 이후 차문화가 발전하면서 화개에 차 만드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분명히 말하지만 80년대 초반 우리차는 뜨거운 열탕법으로 차를 우려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물을 100℃까지 끓인 다음 80℃로 식혀서 차를 마신다. 식힘사발이 나온 이후의 우리 제다법의 변화다. 이에 대해 응송스님은 《동다정통고(東茶正統考)》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먼저 무쇠로 만든 다관에 물을 끓인 후 물이 끓으면 다관에 직접 차를 넣고 조금 있다가 찻잔에 차를 따른다. 지금 우리가 시중에 사용하는 것처럼 물식힘그릇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 그릇 자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약수암의 현문스님은 선암사 큰 대중방에 덩그런 무쇠솥에 물이 펄펄 끓었는데 대중들이 차맛을 보려면 그 무쇠솥의 끓는 물을 주전자에 붓고 차를 우려 먹었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차의 포다법이 모두 뜨거운 열탕 방법이었음이 드러난다.
70년대 말 하동 사람들은 차를 상비약으로 썼다. 야산에 뾰족이 솟아오른 찻잎을 따다 우려 마시고 한동안 땀을 빼면 어지간한 고뿔은 씻은 듯 가라 앉는다고 했다. 그런 전경이 70년대 말 우리차 일번지 하동의 모습이었다.

차를 어떻게 만드는가

차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차맛이 천차만별인 것은 정한 이치. 우리차의 제다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덖음차와 기계차로 나누는데 차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마솥에 덖는 법은 거의 대등소이하나 유념 과정에서 차맛이 결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음다법이 바뀐 것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물식힘사발을 사용하는 것은 덖음차나 기계차나 공통된 점이다. 이에 대해 응송스님은 물식힘그릇을 사용하는 것은 말차(沫茶: 가루차)를 탈 때 물의 온도를 조정하기 위해 사용한 것의 변형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 제다사에 사라져 버린 옛 전통방법인 뜨거운 열탕법이 불가로 면면히 이어져 왔던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또한 사하촌 주변의 차 만드는 사람들이 전통 제다법인 뜨거운 물로 우러내는 포다법을 이어가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의 제다법은 덖음차와 찐차, 증차(蒸茶)와 부초차(釜炒茶) 등으로 구분하는데 먼저 제조과정을 살펴보자.
덖음차는 덖음→유념→건조→완성 과정을 거쳐 차가 만들어진다. 찐차는 증열→조유→유념→증유→정유→건조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부초차와 증차를 살펴보자. 부초차는 봄에 새순을 따서 생잎 자체로 가마솥에 넣어 덖은 다음 꺼내어 비비다가 다시 솥에 넣고 구수하게 덖어 만든 차를 말한다. 증차는 100℃로 끓는 물에 찻잎을 넣고 데쳐내어 물기를 빼서 꾸덕꾸덕해지면 덖고 띄우고 다시 증(蒸)하여 만드는 전통제다방법이다. 따라서 증차는 장기 복용을 해도 위를 상하지 않고 색과 향과 맛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근세 우리 차문화 발전에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응송과 효당을 거론한다. 두 원로차인의 제다법 또한 다르다. 먼저 응송스님을 보자. 응송은 찻잎에 물을 살짝 쳐서 찐 다음 멍석에 놓고 비벼서 다시 가마에 종이를 깔고 살짝 볶아 말린다고 한다.
효당은 가마에 흰 장판을 깔고 살짝 덖어서 손으로 비빈 다음 이것을 다시 보자기에 넣어 발효시킨 다음 다시 가마에 살짝 덖는다. 이들의 제다법은 후학들이 이어가 만들고 있으니 근세 제다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차를 식힘사발로 마시는 법이 전통인 양 통용화 되었다. 어떤 스님은 필자에게 스님들은 몸이 냉하기 때문에 녹차를 꺼린다고 말했다. 자연 뜨거운 열탕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중국차를 선호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의 제다방법이 지금부터라도 연구 개선되지 않는 한 외래차의 홍수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차산지를 찾으면 깜짝 놀란다. 누구나 ‘내가 만든 제다법이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유수의 메이저 기업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대만 쪽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난 달 말 필자는 피아골 야생차밭에서 찻잎을 따는 한 차농(茶農)을 만났는데 그는 이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는데 하루 3만원 씩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중국차 현장에서 느낀 점은 중국과 10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정작 WTO 개방이 되면 국내 찻잎 대신 외래 찻잎이 시장을 장악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차농들은 WTO 장막을 끝까지 막아보자는 것이다.
왜 우리는 외래차와 겨룰만한 명차를 생산하지 못하는가. 어떤 이는 하동이니 구례니 보성이니 다양한 차가 나오지만 세계와 겨룰만한 명차가 부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것은 차인구의 저변 확산이 늦어졌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다산은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닥친 과제는 우수 명차의 개발이다.
지난 해 4월 필자는 녹차미정으로 이름을 얻고 있는 무원현에서 무명 제다인이 내놓는 차 한 잔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음차 하는 순간 입안에 감도는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덖음차에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묘한 느낌이었다.
차꾼들에게 봄소식은 청명에 나오는 명전차로부터 시작한다. 그 뒤 곡우 전후에 채취한 차를 우전차로 입하 사이에 채취한 차를 입하차라 부른다. 이처럼 다양한 차의 명칭은 있으나 차맛이 이름에 못미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차문화의 발전으로 다양한 차가 쏟아져 나온다. 녹차에 이어 황차, 연차, 국화차 등 많은 차가 나와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며칠 전 한 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은 강진 월남 문화마을을 가꾸는 김은규 대표라고 소개하면서 본지의 백운옥판차 기사를 보고 감동 받아 우리 마을의 명차인 백운옥판차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견해였다.
근세까지 이름난 명차들이 생산되었다. 제사용인 백산차를 비롯 천지차, 보림차, 일쇄차, 뇌원차, 승설차와 백운옥판차 등 명차가 생산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그 차들은 현재 음다법과는 다른 뜨거운 열탕식 차였다.
왜 우리 전통차인 뜨거운 차가 사라져 버렸는가. 이는 우리 차계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국악인이 “옛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전통제다법을 복원하는 길만이 외래차의 홍수 속에서 되살아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구증구포 전통 누가 이어가는가

한국차의 특징이 구증구포에 모아지는데 그 비법이 산중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사실이 조금씩 드러났다. 구증구포에 대해 회의적인 제다인은 어린 찻잎을 아홉 번 덖는 순간 찻잎이 파괴되어 차맛을 잃어버려 구증구포란 의미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산사를 끼고 있는 사하촌 주변을 취재하면서 놀란 것은 거의가 아홉 번 덖는다는 사실과 차맛이 시중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본지가 2004년 11월 보도한 「구증구포는 전설이 아니었다」편에 ‘차란 첫손에 잘 볶아야 제맛이 난다’는 보림사 사하촌 이정애 할머니의 말을 실은 바 있다. 아홉 번을 볶든 100번을 볶든 첫손에 제대로 볶아지지 않으면 그 차는 제맛을 잃어버린다는 공통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또한 다승으로 이름을 떨치는 백양사 방장 수산스님의 지론은 차계에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스님은 차를 아홉 번 덖는 동안 발효되면서 뜨거운 차로 바뀌면서 몸을 보호해 주어 옛 스님들은 그래서 차를 약이라고 여겼다고 말한다.
또 스님은 처음 차를 딸 때의 향기와 아홉 번 덖을 때의 향기를 손끝으로 감지할 정도로 차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맨손으로 차를 덖어야만 오미의 제맛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몇 해 전 찻잎 채취부터 볶기까지 7시간에 걸쳐 스님의 제다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차가 만들어진 이후 조실방에 둘러 앉아 품차를 했다. 한 스님이 갓 볶아온 차를 다관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자 그 순간 차향기가 온 방안을 감돌았다. 차를 아홉 번 볶는 순간 자연 발효되면서 뜨거운 열탕으로 우려도 제맛을 낼 수 있다는 수산스님의 말씀을 듣고 예부터 불가에 비전되어 온 제다법이 구증구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차를 마시는 그 자체를 수행으로 삼았다. 차 만드는 일을 수행의 공간으로 각인시켜 준 것은 사천성 아안의 몽정산에서 생산되는 몽산차 만드는 과정이었다. 몽산차는 한나라 때에 보혜감로 선사가 처음 재배한 것이라고 전해온다. 몽산차는 선차(仙茶)로 일컬어지는데 그 품질이 우수해 역대 진공품이 되기도 했다.
몽산차를 만드는 과정은 종교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해마다 4월 초파일이 되면 부근 72개 사찰의 승려들이 몽정산에 구름처럼 모여 향을 피우고 목욕재계한 뒤에 선다(仙茶)를 위한 제를 올렸다. 그리고 365개의 잎사귀를 씹는다. 이는 365일 동안 차를 땄음을 뜻한다.
찻잎을 딴 뒤 제조기술이 능한 스님들이 이를 덖는다. 그때 다른 승려들은 둥글게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경전을 읽는다. 이렇게 시작된 선다의식은 아직까지 이어져 2003년 명산현 지거사에서 몽정산 황차 배제대전을 복원해 옛 전통을 되살리기도 했다.
뜨거운 열탕 방식의 차가 수행에 이로움을 준다는 사실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응송계의 후학들이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 출가 제자인 고재석 스님이 대흥사 사하촌에 살면서 응송의 제다법을 이어갔다. 응송스님은 평소에 차의 구덕을 자주 말했는데 그 내용을 옮겨보자.

첫째 머리를 좋게 하고[利腦], 둘째 귀를 밝게 하고[明耳], 셋째 눈을 밝게 하고[明眼], 넷째 입맛을 도와주고[口味助長],다섯째 고달픔을 풀어주고[解勞],여섯째 술을 깨게 하고[醒酒], 일곱째 잠을 적게 자고[少眠], 여덟째 갈증을 풀어 주고[止渴],아홉째 추위와 더위를 이긴다[防寒斫暑]

응송스님의 음다법을 제자들은 유훈처럼 여겼다. 재석스님은 차탕에 찻잎을 한 움큼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차를 우려냈다. 재석스님이 밝혀낸 제다법은 두 번째 볶을 때 차맛이 결정된다면서 두 번째는 선정을 닦듯 정성을 다할 때 진정한 차의 맛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응송스님 제다법을 이어온 박동춘 씨는 중국 강서성 영수현에 있는 선종사찰인 운거사의 제다법과 응송스님의 제다법이 일치함을 발견, 중국 선종의 제다법이 우리나라로 유입된 것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실장은 중국에서 선맥이 들어올 때 제다법까지 들어온 사실은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 전통 제다법이 뜨거운 열탕 방식이라는 것은 우리차의 동맥을 밝히는 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품화되고 있는 모든 차가 100℃ 물을 80℃로 식혀서 음다하는 현재 상황에서 구증구포로 제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나 그 명맥을 이어가는 정신이야 말로 한국차 정신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차의 세계》2005년 5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10-16 오전 11: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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