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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봉발, 일본에 가다

 


도예가 신현철의 손에 태어나

일본에 간 도제 奉鉢


우당(차문화연구가)

 
도예가 연파(蓮波) 신현철 씨가 만든 도제(陶製) 봉발(奉鉢)이 최근 일본 오미야(大宮)시의 오미야의료전문대 입구 조형물로 세워졌다.
신씨가 만든 봉발은 높이가 64㎝로 캠퍼스를 찾는 이들의 눈을 끌면서 부드럽고 친근한 느낌을 심는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신씨는 이 봉발을 양산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있는 보물 제471호 봉발탑을 보고 영감을 얻어 조성했다고 한다. 물론 통도사의 봉발탑은 석조로 조성된 것이라서 신씨의 도제작품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대좌 위에 발우를 얹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신씨의 도제 봉발은 통도사 봉발탑과는 달리 뚜껑이 없는 것도 특이하다. 또 발우를 바치고 있는 몸체가 통도사 봉발탑과는 달리 둥근 주름을 다섯이나 돌린 것도 특색이다. 봉발탑이 화강암 석제의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달리 도제 봉발은 도제 특유의 윤택함과 매끄러운 느낌을 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제질이 화강암이 되었건 도기가 되었건 ‘봉발’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점이다. 봉발은 ‘발우를 받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발우(鉢盂)는 ‘스님들이 쓰는 식기’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수행자들이 탁발할 때 쓰던 적당한 양이 들어가는 식기’라는 뜻이 있다. 2500년 전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도 부처님이나 스님들이 탁발할 때는 모두 이 발우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서 집집을 돌며 먹을 것을 구했다.


그런데 통도사 봉발탑의 발우는 실제 발우보다 훨씬 크고 뚜껑마저 달려 있어서 정말 절에서 쓰는 발우를 만들어 놓은 것인지의 여부가 아직도 논란꺼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어떻든 나라의 보물로 지정된 그 화강암 발우는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대좌 위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릇을 받쳐올리는 형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곧 그 발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것으로 미래세에 출현할 미륵부처님에게 드리기 위해 석가부처님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발우와 함께 가사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부처님인 미륵불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중생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처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실 미륵부처님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부처님이 쓰던 발우를 떠받들고 있는 가섭의 모습이 바로 봉발탑으로 표현되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봉발탑’이라고 명명한 것은 아무래도 가당치 않은 것 같다. ‘탑’이라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무덤과 같은 것인데 봉발탑이 그런 뜻은 없을 터이고 다만 발우를 떠받드는 형태라고 하면 그저 ‘봉발대’라고 하는 편이 옳았을 것 같다. 실제 통도사 스님들은 예전에 이것을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이렇게 통도사 봉발을 모티브로 해서 도조로 만들어진 신씨의 봉발대는 신씨는 그저 ‘봉발’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절이 아닌 대학의 입구에 놓이면서 일견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조형물이 ‘인류 구제의 기다림’과 미륵부처님이 만드는 용화세계처럼 ‘최고로 행복한 세계’에 대한 희원을 담고 있는 것 같다고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신씨는 이번에 봉발을 두 개 만들었는데 다른 하나는 서울 난곡사의 태허스님이 소장하고 있다. 태허스님이 소장하고 있는 봉발은 높이가 84㎝로, 대좌 위에 얹어 놓은 발우는 지름이 36㎝, 굽높이가 6.5㎝에 굽지름이 15㎝이다.

《차의 세계》2005년 5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11-15 오후 4: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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