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핫이슈

 뉴스초점

 기획특집

 연재

 출판

 소식

 포토뉴스

 타매체 소식

 

 

선차문화의 연원


1.
선문화와 차문화는 모두 당대(唐代)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다성(茶聖)``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저술하여 차에 대한 규범을 마련하고, 같은 시기의 조주종심(趙州從 ) 선사가 ``끽다거(喫茶去)``라는 공안으로 학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선과 차는 하나가 되었다.
조주종심(趙州從 ·778-897)은 당나라 때의 이름난 선승이다. 그는 어려서 출가한 이래로 20여 년 동안 남전보원(南泉普願)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도를 터득한 이후에는 여러 지방의 존숙들을 두루 참방하였다. 80세 되던 해에는 신도들의 요청에 따라 조주 동쪽의 관음원(觀音院: 지금의 백림선사(柏林禪寺))에 주석하여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조주선사어록』에는 이런 기록이 실려 있다.

선사께서 새로 온 두 스님에게 물었다.
"상좌는 이전에 여기 온 적이 있던가?"
"온 적이 없습니다."
"차나 마시고 가게!"
선사께서는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이전에 여기 다녀간 적이 있던가?"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차나 마시고 가게!"
그러자 원주가 선사께 물었다.
"스님! 온 적이 없다고 해도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시고, 온 적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시는지요?"
그러자 선사께서는 "원주야!"하고 부르셨다. 원주가 대답하자, 여전히 "차나 마시고 가거라!"라고 하셨다.

조주선사의 ``끽다거``의 선학사상은 당나라 이래로 중국의 선수행자와 차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선과 차의 교류를 따라 다른 나라로 전파되기도 하였다. 일본 다도의 종사인 센노리큐(千利休)는 스승 이큐소우준(一休宗純)으로부터 ``끽다거``의 공안을 전해 듣고 선에 입문하게 되었다. 한국의 다도 사상 역시 ``끽다거``의 공안에서 다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늘날 한국의 차인들은 조주선사를 개산조로 받들고 있다.

2.
다도문화는 음차를 계기로 하는 종합적인 문화 시스템으로, 종합성·통일성·포용성을 지닌다. 여기에는 예술·도덕·철학·종교를 비롯한 각종 문화적 요소가 들어 있는데, 그 핵심은 ``선(禪)``이다. 중국의 다도는 차예(茶藝)·차덕(茶德)·차례(茶禮)·차리(茶理)·차정(茶情)·차학설(茶學說)·다도(茶道) 등을 선도하는데, 중국 다도 정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화(和)``의 정신이다. 중국의 다도는 차사(茶事)를 통한 개체의 미적 향유 과정에서 품격을 함양함으로써 인류 전체의 조화와 평안을 이루게 한다. 요컨대 다도의 정신은 평범하게 말해서 바쁜 가운데 여유를 찾고, 고단함 속에서 즐거움을 얻고,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얼마간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누리고, 찰나에서 영원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중국 문화는 도(道)를 우주와 인생의 법칙이자 규율로 여긴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쉽게 도를 언급하지 않는다. 중국의 음식이나 놀이 같은 여러 가지 가운데 ``도``의 경지로 승화된 것은 다도밖에 없다. 차를 이러한 지위로 격상시킨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순수한 생리적 측면이다. 차는 신농씨(神農氏) 이래로 줄곧 갈증을 풀 수 있는 좋은 음료였다. 향기롭고 부드러우면서도 넉넉한 느낌은 사람들에게 생리적 즐거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둘째, 감각의 측면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매우 많은 명차가 있었다. 그것들은 차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빛깔과 모양 그리고 다구가 주는 미감은 갈증 해소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코와 혀를 즐겁게 만든다. 이는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예술적 체험을 경험토록 한다.
셋째, 정신적 측면이다. 차의 아성(亞聖)으로 불리는 노동(盧仝)은 "칠완차시(七碗茶詩)"를 지었는데, 그 시구에 이렇게 노래하였다.

한 잔에 목구멍을 적시고
두 잔에 외로움과 답답함을 씻어내고
세 잔에 메마른 가슴을 씻으니
오직 문자 오천권이라
네 잔에 가벼운 땀 배어나니
평소 불평스럽던 일들이
씻은 듯 모공을 통해 날아간다
다섯 잔에 온몸이 가벼워지고
여섯 잔에 선계(仙界)의 영혼과 교감하고
일곱 잔에는 이윽고 견딜 수 없더니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서 청풍이 일어난다.

여기서 차는 사람들이 단순히 갈증을 풀고 음미하던 것에서 외로움과 답답함을 씻어내는 정신적 측면으로 승화된다. 또 평소의 불평불만을 연상케 하는 정도로 확대되고, 나아가 선계(仙界)의 영혼과 교감하고 신선이 되어 승천하려는 환상의 경지에까지 도달한다.
넷째, ``선(禪)``을 체득하는 측면이다. 불교협회 회장을 지낸 조박초(趙樸初) 거사는 "일곱 잔 마시면 지극한 맛을 사랑하게 되고, 한 주전자를 마시면 진정한 취향을 얻게 되니, 부질없는 수 백 수 천 가지 게송보다도, 한잔 차를 마시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노래하였다. 예로부터 선방(禪房)에서는 차를 즐겼는데, 그것은 선수행에 있어서 가장 적합하였기에 조주선사께서 세 번이나 ``끽다거``를 언급하신 것이다.
중국의 예술가와 문인들은 차를 매개로 하여 서로 교유하였다. 『한의재야연도(韓熙載夜宴圖)』에는 차를 우리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의 예술가들은 차는 술과는 달리 탈속적이고 고결한 것으로 서로 어울려 음미하는 가운데 고상하고 친밀한 정감을 끌어냄으로써 상호 정신적 교감을 촉진할 수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문인묵객들의 차회(茶會)는 어느 정도 문화 살롱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전해 내려오는 차에 관한 그림·시가·문장·서적 등은 모두 귀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3.
근대 이래로 선차문화는 국내외 각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관심을 모음으로써 차문화와 다관(茶館)이 일시에 주목을 끌게 되었다. 이는 동방문화와 아시아문화가 근현대에 이르러 서구문화의 격랑을 벗어나 자기 민족과 자기 지역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일종의 전통문화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삶의 질을 제고하고 정신적 뜨락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의식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차츰 인터넷과 텔레비전에서 영화관과 연극장으로 되돌아오고, 아울러 책, 다관, 선원으로 관심을 돌린다. 이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새로운 문화의 방향을 탐색하고 추구하는 것이며, 또한 조화로운 삶과 사회의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다도는 ``화(和)·경(敬)·청(淸)·적(寂)``을 사체(四諦)로 삼으며, 한국의 다도는 ``화(和)·경(敬)·검(儉)·진(眞)``으로 그 정신을 개괄한다. 중국에서는 과거 『다경』의 ``청(淸)·행(行)·검(儉)·덕(德)``의 네 가지를 사체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대륙을 비롯한 홍콩과 타이완 등지가 다도의 사체에 대한 나름의 견해가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핵심을 따져보면 ``정(靜)``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은 중국 다도의 수습(修習)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다. 무엇 때문에 작은 찻잎을 통하여 우주의 심오한 신비를 터득할 수 있는지? 어째서 담담한 찻물에서 인생을 맛볼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차에 관련된 활동을 통하여 심성을 살필 수 있는 것인지? 왜 다도의 수습을 통하여 정신을 정화하고 인격을 연마하며 자아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인지? 그 해답은 오직 ``정``일 따름이다. ``정``의 의미를 터득한다면 천지와 만물을 통찰하고, 변화를 헤아리고, 항상 유쾌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도가에서도 ``정``을 중시하고, 유가에서도 ``정``을 중시하지만, 불가에서는 보다 ``정``을 중시한다. 우리가 흔히 ``다선일미``를 언급한다. 마음이 물처럼 고요해야만 마음의 바탕이 깨끗할 수 있고, 모든 생명을 당하에서 관조할 수 있다. ``정``이라는 글자 위에서 차는 선과 상통하고, 또 전통문화와 상통할 수 있는 것이다.

4.
전통문화와 선차문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조주종심에 대한 사람들의 추앙도 높아져간다. 역대로 다선(茶禪)의 개산조로 받들어져 왔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1998년 이전에 있어서 수시로 찾아와 조배(朝拜)하던 일본의 선승들은 조주선사를 선의 위대한 거장이자 자신들의 은인이라고 여겼다. 교토(京都)와 오사카(大阪)를 비롯한 일본 각지의 다관에서는 조주선사의 초상과 ``끽다거``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차인들은 조주선사를 다도의 시조로 간주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2001년 10월 19일, 하북성 불교협회·조주 동림선사는 한국의 불교춘추사·명원문화재단과 공동으로 <한중우의조주고불선차기념비명개막식>과 <중한 ``다선일미``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고 아울러 한·중 양측이 선차 시연을 펼침으로써 천년 세월의 조주 고탑에 새로운 차향을 퍼뜨렸다.
선차문화교류가 이루어낸 공헌은 한국 선문화계와 차문화계의 자자한 칭송을 받았고, 이에 금년에는 명원문화재단에서 제정한 ``명원차문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백림선사의 정혜(淨慧) 스님과 명해대화상(明海大和尙)은 조주차를 지니고서 일본·한국·싱가포르·프랑스 등지를 돌며 세계의 선차문화교류에 공헌하기도 하였다.

5.
``조주차``에는 ``조주``라는 이름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세상에 전해지지는 않는다. 1994년 정혜 스님은 운거산(雲居山)에서 모종을 가져다 조주 동백선사에 옮겨 심으며 진정한 ``조주선차``가 자라기를 기대했지만 오랜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아무리 세심히 공을 들이고 다방면으로 연구를 했지만 조주차의 싹을 틔우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당시 농업과학원 소과연구소(蔬果硏究所)의 장점의(張占義) 소장이 이런 소식을 전해 듣고 하북성에서 조주차를 키워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온갖 좌절 끝에 그는 결국 2001년에 영수다원(靈壽茶園)에서 조주차의 시험재배에 성공하였다. 장점의 소장의 성공은 중국의 차재배를 위도상에서 북쪽으로 1도 올려놓음으로써 당시 언론매체와 차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당시 명해대화상이 명안법사(明安法師)를 대동하고 영수다원을 찾아 차를 채취하여 덖었는데, 명해대화상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장점의 소장이 차 이식에 몰두하던 무렵 우리는 만나면 ``조주차``가 실재한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습니다. 내가 뭐라던 그는 조주차는 분명 실재한 것이라고 우겼지요. 우린 입으로는 그렇지요 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비웃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게 자료 하나를 건넸습니다. 고원경(顧元慶)이 지은 『다보(茶譜)』의 품사(品司)였는데, 이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지금 양선(陽羨)에서 차가 생산되어 매우 중시된다. 덖는 방법도 조주선사께서 전한 방법이다. 지방 장관에게 담당 부서를 설치하고 잘 관리하여 올리게 하였다.] 그렇다면 조주차는 ``차의 선``일 뿐 아니라 ``선의 차``인 것입니다. 진정 ``다선일미``이며 천하의 조주인 것입니다."

기사 작성일 : 2007-04-11 오후 4:12:21
기사에 대한 덧글 등록된 덧글 : 0개
이 기사와 관련하여 등록된 덧글이 없습니다.
 
작성자  
제목  
덧글 내용  
비밀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