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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문화의 기원 ⑮│경산에서 화개를 본다Ⅲ

 

일본다도가 경산으로 간 까닭

최석환(본지 발행인)

한국 차계가 저장성(浙江省) 여항(余杭)의 경산사를 잊고 있을 때 일본은 해마다 경산사를 찾아 조배(朝拜)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다도의 원류가 경산에서 시작되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지난해 본지를 통해 <경산차와 화개차의 제다법이 거의 동일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지금까지 화개차의 제다법이 일본 큐슈 지역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을 전면 뒤엎어버렸다. 경산과 한국의 친연관계가 밝혀진 뒤에도 한국차계는 침묵했었다. 진전을 보이지 않았고 다만 조용히 머물렀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초 항저우 영은사에서 광천 스님과 1년 만에 해후했다. 스님과 밤늦게까지 다담을 나누었다. 지난 4월 19일 경산사에서 최근 선차문화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수기국제선차문화연구 고봉연토회’를 주최하면서 필자를 발표자로 초대했다. 경산차와의 해후는 그렇게 이뤄졌다.

왜 경산차인가

800년간 이어져온 일본과 경산 차와의 끈끈한 인연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통해 다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지난 3월 15일 후 주석이 중·일 청소년이 다예와 다도를 표연하는 차실을 전격 방문했다. 중·일 청소년 우호교류 개막식 자리에서 후 주석은 “중국의 다예와 일본의 다도는 솜씨는 같으나 표현된 형식이나 그 맛은 사뭇 다릅니다. 각기 특징은 있지만, 화(和)의 정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화목하게 손잡고 조화롭게 공생하는 것입니다. 양국 청소년이 차를 인연으로 우의를 쌓기를 바라며 상호 이해와 우의가 증진되어 중·일 우호에 많은 공헌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일본의 말차도를, 중국은 태극다도를 표연했다.
“차로서 인연을 맺고 조화를 이루자”라는 후 주석은 올림픽을 겨냥한 차를 통해 인연을 맺자고 역설했다. 근래에 한국과 중국이 손잡고 선차문화 교류를 통해 기선을 제압당하자 일본으로서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던 터였다. 그런 차에 후 주석이 일본다도에 매력을 느끼자 일본다도계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들떴다. 후 주석은 조화를 이루자는 뜻을 그 자리에서 밝혔다.
일본은 800년 전 난포조묘(南浦紹明) 선사가 남송시대 고승 허당 선사로부터 경산다연(차탁자, 차전(茶典)을 일본으로 가져가 경산다연을 올곧게 이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2008년 4월 19일 경산사에서 열린 ‘수기국제선차문화연구 고봉논단전야제’에서는 중·일 불교음악교류 등 양국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음악회에 200명의 일본 스님과 불자를 초대, 그 위력을 과시했다. 무려 7,000만 원이 투입된 음악회는 청중을 열광시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800년 만에 빛 본 경산다연

전날 의천이 세웠던 옛 고려사 터(지금은 중국과 일본의 합작으로 세운 화가산장)에 머문 뒤, 다음날 날이 밝자 경산사로 향했다. 그날따라 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경산에 이르자 일본 묘심사파가 허당지우(虛堂智愚) 선사의 영정을 모시고 그 앞에 향을 피워 헌다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에 다도를 전한 은인 허당 선사를 한없이 존경했다. 그래서 해마다 경산을 찾아 경산다연의 찬란했던 역사를 되새기려 하고 있다. 법당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들로 인신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스님과 신도들은 일본에 다도를 전해준 허당지우 선사의 탑을 참배하고 헌다를 올리며 한없이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에서 차와 선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가 일본다도를 발전시켰다.
200여 명이 넘는 일본 승려와 거사가 한꺼번에 경산사를 찾아 허당의 영정 앞에 헌공의식을 거행했다. 그 후 그들은 중국 다도를 표연하고 항저우 경산사에서 열린 ‘제1회 국제선차문화연구 고봉논단’에 참가한 뒤 허당의 정신을 가슴에 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다도인들이 뿌리를 찾는 여행의 목적지를 경산으로 한 까닭은 남송시기 찬란했던 경산다연을 스스로 느끼고자 한 까닭일 것이다.
차학의 대부격인 장만방(庄晩芳) 선생은 “경산다연은 일본으로 건너가 화(和)·경(敬)·정(精)·청(淸)·도(道)·덕(德)을 널리 알렸다”고 말했다. 허당의 다풍은 잇큐(一休, 1394~1481)를 거쳐 난포조묘로 이어졌다. 잇큐가 난포조묘에게 허당의 글씨를 한 폭 준 것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뒤로 차어(茶語)가 있는 족자를 걸고 차회를 하는 풍경을 종종 보아왔다. 그 원류가 잇큐가 난포조묘에게 준 허당의 글씨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조차 사라져버린 경산다연을 복원해보자.
‘일본다도의 기원은 정원(正元) 축전(竺前) 숭복사(崇福寺) 개산 난포조묘가 송나라에서 들여왔다’라고 했다. 《속시청초(續視聽草)》와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에는 ‘난포조묘가 송나라에서 귀국하면서 차탁자와 차 도구를 숭복사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선과 다도》에서는 ‘난포조묘가 경산에서 중국의 차탁자와 차전(茶典) 7부를 가져와 일본에 전하였다. 차전 중에 《다도청규》 3권도 있다’고 하였다. 이런 기록들은 경산다연이 일본 다도의 원류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다연’, 본명은 ‘다례’로 경산고찰은 차를 술 대신 손님들에게 내놓는 일종의 음다의식이다. 차는 승려들이 좌선 시 잠이 깨기 쉽게 하는 효력이 있어 차와 승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었다. 당·송 시대 불교계에서 성행한 《백장청규》, 《선원청규》에는 승려가 음다를 하며 계행(戒行)에 들어가는 의식이 나와 있다. 의식에는 규정이 있으며 ‘다례’라고 부르고 승려들은 반드시 준수해야만 했다. 경산고찰은 다례를 발전시켜 귀빈을 청하는 연회에 사용하였고 후에 사람들은 ‘다연’이라고 불렀다.


《차의 세계》2008년 5월호

기사 작성일 : 2008-05-21 오후 3: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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