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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 공간 - 베이징의 茶文化


베이징에 갔더니 차는 있어도

우리 녹차綠茶는 없더라

 

석천(본지 편집위원)

 
중국차의 메카 베이징. 하북성에서 불어온 선차(禪茶) 바람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까지 휘몰아쳐 왔다. 8월 말 필자는 베이징의 차의 중심 거리인 베이징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리엔따오(馬連道)의 차성(茶城)에 서 있었다.
차성의 관문 벽면 위에는 한 필의 차마(茶馬; 차를 운반하는 말)가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그려 놓았고 그 밑에는 경성다엽 제일가(京城茶葉第一街)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아래에 차가 굴러가고 있었다. 우리의 녹차가 아니라 폭스바겐을 물리친 현대자동차(車)가 힘차게 굴러가고 있었다.
왜 향기로운 차 이야기 자리에 자동차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차계도 이제 눈을 크게 뜨고 현대자동차처럼 우리의 녹차를 베이징에 팔아보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해 중국차에 정통한 중앙민족대학의 박사 연수생인 여상(如常)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
중국 사람이 괜찮다는 한국의 차(茶)는 중국에서는 중간 수준 정도 가는 차인데 한국에서 20만 원 이상 가격에 팔리는 그 차로, 시장경쟁에서 이기려면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차를 값싸게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그의 견해를 피력해 왔다.
몇 해 전 필자는 상하이의 차 전문점에서 100g에 7000위안 하는 철관음을 맛본 적이 있다. 입안에 맴도는 그 향기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우리 일행 중 한 차 애호가는 그 차를 선물하기 위해 선뜻 구입했는데 그 광경을 지켜본 우리 정통 제다법을 이어가고 있는 한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처럼 우리 몸에 맞는 우리 녹차가 최고라고 고집만 할 것이 아니라 시야를 크게 뜨고 대륙을 향해 진출해 보자. 이것은 오늘 우리 차계가 안고 있는 끝없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선차대회 열리는 석가장시의 표정

베이징에서 하북성의 성도 석가장시까지는 세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 석가장시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선차대회를 개최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도 자부심이 크다. 선차대회는 하북성 불교협회와 백림선사 선차교류기업집단과 한국의 『차의세계』가 공동으로 주최한 점에서 상징성이 매우 크다. 또한 선차대회가 개최되는 석가장시는 조주의 끽다거 화두의 발상지로 하북성(河北省) 사람들은 끽다거가 생활화된 터전에 살고 있다. 특히 2001년 10월 한중우의 조주고불선차기념비를 세워 선다일미 정신을 공고히 한 점에서 선차대회 결합을 일찍부터 예견해왔었다. 이 비석을 세우게 된 까닭은 조주의 선다일미 임운자재의 생활선의 선풍을 발양하여 새로운 시대의 인류 정신문명으로 승화코자 하는 데 의의가 있어 선다일미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그 비문에 기록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선차대회는 석가장시(石家莊市)와 조현(趙縣)현이 적극 협력함으로써 석가장시의 중심센터인 시정부청사 맞은편에 위치한 인민회당(人民會堂)에서 개최하기로 결정지었다. 선차대회가 알려지자 한국 차계의 만만찮은 저항 또한 크게 작용했다. 이른바 유파 논쟁이었다.
다른 유파는 인정치 않는다는 지극히 개인 중심의 유파로 전락한 것이 한국차의 현주소였다. 이른바 조주의 다풍을 우리가 이었다느니, 우리 차계가 조주까지 갖다 붙이는 역사 앞지르기를 내세우고 있는 실정에 있다. 그러나 조주 선다일미 기념비에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은가.
“한중은 한 뿌리이니 예로부터 한 집안이며 선풍을 합치하니 법맥 또한 서로 전함이로다.”
정중무상 - 마조도일 - 마곡 - 무염 - 남전 - 도윤 - 청공 - 태고에 이르기까지 법맥상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태고 이후의 다풍은 거론하지 않은 점에서 이 비석에 담겨져 있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끽다거의 발상지에서 갖는 선차대회 소식은 베이징에서도 화제였다. 천안문 광장 앞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노사다관에서 만난 한 품다인은 선차대회 소식을 접하고 지금까지 수면 아래로 머물렀던 수도 베이징의 차문화가 비상비천하게 될 것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근년에 하북성 오악채에서 찻잎 시험재배에 성공하여 남차북이를 실현하는 등 차연구에 박차를 가하였고 석가장시에서만 200여 곳의 다관이 성업하는 등 차문화의 활기를 되찾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선차대회는 차와 불교의 결합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근년에는 기업이 앞장서서 선차문화 결합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번에 선차문화교류대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완차(大碗茶) 정통 회복되다

 
수도 베이징의 다풍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대완차로부터 시작된다. 과거 북경 거리에는  대완차를 파는 노점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리마다 “대완차 드시오”라고 연신 소리를 질렀다. 커다란 다호(茶壺)에다 대차완에 찻물이 쏟아지면 그 찻물 한 사발을 들이키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을 20년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북경에 대차완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러던 중 대완차를 팔던 그곳에 대완차상문집단상장(大碗茶商繆集團商場)이라는 4층 건물이 들어섰고 그곳에 노사다관(老舍茶館)이 문을 연 것은 1998년이었다.
윤성희 씨가 노사다관의 문을 열어 노사 서경춘(舒慶春) 씨가 일으켜 놓은 노사의 정신을 이어갔다. 청나라 말기 북경의 명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몇 해 전 윤성희 씨가 돌아가자 그 다관을 그의 딸이 계승시켜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노사다관 입구의 거리에서 팔던 대완차의 정신을 이어갔다. 매일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4시 30분까지 계속 파는 대완차는 한잔에 2각씩 받고 아직도 계속하고 있으니, 이를 두고 북경의 상징적 차풍속도라고 말하고 있었다.
베이징 사람들은 주로 화차를 마신다. 중국차왕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이서하(李瑞河) 회장이 이끄는 천복집단이 베이징에서만 60여 곳이 성업중이다. 천복명차(天福茗茶)에 들어서면 먼저 차를 한 잔 권하는데, 그 차가 바로 꽃차였다. 그처럼 베이징 사람들은 차를 무척 좋아했다. 이유인즉 물으나마나 차를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북경 사람들의 차 마시는 풍습을 동진(東晉)의 사도장사(司徒長史) 왕몽(王될)은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해 사람들이 오면 번번이 차를 마실 것을 명령하자 사대부들은 모두 그것을 걱정으로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베이징 사람들이 차를 마시게 된 계기가 되었다. 특히 북방민족은 남방 사람들처럼 차를 기교 부리듯 마시지 않고 커다란 차호에 차를 한 사발씩 들이켜 마시는 풍조가 성행했다.
북경 최대의 차 시장인 마리엔따오(馬連道)는 중국 하북 지역 차의 집산지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예부터 중국인들은 일곱 가지 생필품 가운데 차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차가 이미 생필품이 되어 버렸듯이 중국인들의 차 마시는 풍습 또한 갖가지 형태로 바뀌어갔다. 황제와 대신들의 다연과 민간으로 전해진 다사(茶事) 활동이 중단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북경의 명물인 대완차가 갈수록 우아해지면서 다예관의 분위기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몇 해 전 마리엔따오를 찾았을 때의 모습과 전혀 딴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북경에 진출한 곳곳마다 푸얼차 전시장을 방불케 한 점이었다. 대부분의 마리엔따오의 상인들은 남방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가게의 곳곳에 푸얼차가 가득 차 있었다. 그중 천우다업을 들렀다가 이채금 씨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 베이징 사람들은 푸얼차를 별로 찾지 않아요. 대부분 대만과 홍콩, 한국의 사람들이 많이 찾지요. 베이징 사람들은 주로 화차 류를 많이 찾습니다.”
마리엔따오(馬連道)는 하북 지역의 최대 차의 집산지라고 말할 수 있다. 북경과 천진 하북성 일대에 공급하는 차가 모두 거의 이곳 마리엔따오를 통해 공급되었다. 북경 차를 논할 때 상징적 인물은 완장후 차장(茶蔣)이었다. 완장후의 주인은 손환지였다 그는 1919년 문을 연 이래 1957년 정흥덕으로 상호를 바꾼 뒤 거듭 성장했다. 그 뒤 몇 해 전 북경 시내만 60여 점포망을 자랑하는 천인명차가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차를 속속 개발, 베이징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번 하북성에서 선차대회를 개최하게 된 데 대해 백림선사(栢林禪寺) 정혜(淨慧) 화상은 “다도 정신의 원천인 선차 교류를 통해 동양의 지혜가 녹아나는 대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처럼 베이징의 차문화는 하북성에서 개최되는 선차대회를 계기로 거듭 발전될 전망이다.

《차의 세계》2005년 10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7-04-13 오전 9: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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