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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인과의 대화│정학래(차연구가)

 

제2의 문예 부흥을 꿈꾸며

최석환(본지 발행인)

 
차연구가 정학래(鄭學來) 선생은 차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차문화 운동을 일군 1세대 차인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우리 차계에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 후반 한국차인회 상임이사를 끝으로 차계와의 인연을 뒤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에 일우제(一羽齊)란 우거에 안주하면서 차와 명상수련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가 20년간 침묵하다가 말문을 연 계기는 80년대 우리 차문화를 일군 1세대 차인들 모두가 타계한데다 더 늦기 전에 70년 이후 80년 중반의 우리차 역사를 소상히 밝히고자 함이었다.
정학래 선생은 30대 초반의 의재 허백련을 만나면서 차와 인연을 맺었다. 그 뒤 미술사학자 김호연씨를 만나 80년 초 『분재 수석』 잡지에 3회에 걸쳐 ‘차란 무엇인가’를 기고하면서 차의 정신에 빠져들었다. 그 시기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학적 다도 철학에 빠져들어 그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다도에 심취해 있었다.
물론 그의 고향이 해남인 점 또한 쉽게 차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 시절 대흥사의 일대 강사였던 정학채 스님을 찾아 차의 이론을 들을 수 있었고 그의 고향에서 김재현과 김봉호 선생등 선배 차인들의 발군의 노력으로  차의 길을 걷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다도는 ‘불완전함의 존중’이다. 다도의 본질은 인생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마음 착한 시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학래 씨는 76년 『법륜지』에 「초의선사의 차」, 80년 『분재 수석』에 「한국의 차를 말한다」, 1983년 『정원학회지』에 「한국의다도」, 『월간 다원』 창간호에 「일본의 차 정신」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차이론을 정립했다.
차와 인연을 끊고 은둔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그는 차에 대한 자료를 일우제에 보관하는 열의를 보였다. 한 때 일우제에 물난리가 나서 오랫동안 소장해 온 귀한 차 자료가 유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초의선집』 상·하권의 필사본을 물난리 속에서도 건질 수 있었다.
필자가 인터뷰 차 우거를 찾았을 때 소중히 간직해온 초의선사의 필사본을 보여주면서 “이 자료야말로 한국차사에 영원히 기록될 만한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처음 그의 말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필자가 인터뷰를 간곡히 부탁하자 “차 이야기라면 하고 싶은 말이 더 없다”고 몇 번이고 거절했다. 필자가 본지에 ‘한국차의 기원’을 밝히고자 한다는 의도를 간곡히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달 초 전화가 왔다. “잡지에 난 80년대 초반의 한국차의 기원을 보고 싶다”는 선생의 전화였다. 그날 바로 사무실을 방문했다. 닫혀있는 노장의 말문이 열리던 순간이었다. 그 뒤에도 한 달을 고심 끝에 최근 명원 문화재단의 고문을 수락하면서 80년 격동기를 겪었던 그 시절의 차를 극적으로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더 잊기 전에 남겨두어야겠다는 선생의 의지가 반영된 인터뷰였다.
닫혀 있던 말문을 여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와 인연이 깊기 때문이지요. 한국차인회 상임이사를 끝으로 차계를 떠나 있었지만 늘 차계를 동경해왔고 차행사가 있을 때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습니다.

80년대 우리차의 개화기 현장에 있었던 원로 차인이십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우리차의 역사를 뒤바꿀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서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당시 차계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당시에 차를 말하면 일본의 차문화라고 해서 주위에서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차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하나 둘 생겨나 마침 79년 한국차인회가 결성되었고 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얼마나 차를 마시지 않았으면 우리 차인들이 어깨에 띠를 두르고 인사동을 돌며 우리 차를 마시자고 했겠습니까? 1983년 『다원』이 창간되면서 비로소 차운동이 일어나는 전환점이 되었지요.

차와의 인연이 몹시 궁금합니다.처음에 일본 서적을 보다가 차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 뒤 차를 만나게 된 계기는 의재 허백련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였지요. 그 때 의재 선생은 30대 초반이었는데 다산의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했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는 말에 끌려 차에 깊이 빠져들었지요. 그 뒤에 대흥사를 찾아갔는데 응송 스님과 쌍벽을 이루었던 당대의 강사 정학천 스님을 만나면서 초의 스님의 동다송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다송』에 차의 구덕(九德)를 말하고 있는데 차를 마시면 머리에 이롭고 귀가 밝아지고 입맛이 돋아나며 술을 깨게 하고 피로는 풀어주며 갈증을 멈추고 추위를 멎고 더위는 물리친다고 하는 말을 듣고 차에 매료되고 말았지요.

『초의선집』 상, 하권을 소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물난리 속에서도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지요.

조선시대 차가 부흥하게 된 동기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차를 통한 추사와 초의의 우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먼지가 끼고 퇴색되고 파묻혀 깨진 것 같았지만 차문화가 조선조 불교선맥의 본산인 대흥사에서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다산, 추사, 초의의 어울림으로 당시 신분계층이 엄했던 시절에 차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극대화시켜 주는 매개체로 차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지요. 다산은 카톨릭과 실학의 학자요, 추사는 유학자, 초의는 승려인데 한 잔의 차는 이 세 사람의 종교적인 울타리까지 무용지물로 만드는 구심점이었지요.

80년 대 한국차인회의 상임이사로 차계 일선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요.
79년 1월 20일에 한국차인회가 출범했습니다. 회장에는 식물학자 이덕봉씨, 부회장에 박종한, 김미희 씨가 각각 당선 되었습니다. 그 첫째 사업으로 일지암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차문화 운동의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80년 7월 명원다회 설립자인 김미희 여사의 주최로 ‘궁중 생활, 승가차 생활’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발표되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차인회는 당시 활성화되지 못했고 남산의 조그마한 사무실에 있다가 다시 효동원의 정원호 원장의 사무실에 간판을 걸고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정원호, 김봉호 씨가 주도하여 당시 문예진흥원장으로 있던 송지영 회장을 모시면서 차문화가 활성화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지요. 당시 서화전을 열어 자금을 충당해 인사동에 사무실까지 마련할 수 있었어요. 차인회보를 혼자 만드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당시 내분에 휩싸여 일괄 사퇴를 하고  물러나게 되었지요. 그 뒤로 차계 밖에서 차계를 외면하면서 20년간 은둔의 세월로 살아왔습니다.

차에 인생을 건 뒤 보람을 느꼈던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40대 아나운서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차에 매료되어 차문화에 대해 KBS에 40분간 집중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강진, 해남, 진도, 송광사, 하동 쌍계사, 부산 등을 1주일간 돌며 취재를 하며 우리 차문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 차문화 확산에 계기가 되었지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쉬운 것은 상임이사를 1, 2년만 더 했다면 올림픽 때 한국에 다도가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계기가 오지 않은 것이 지금도 후회스럽습니다.

이번에 명원문화재단 고문에 추대돼 선생님 차인생에 있어 제2의 전성기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두가 차로 맺은 인연이겠지요. 사실 명원 김미희 여사가 그 당시 차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오늘 이와 같이 차가 발전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분이 우리나라 차 발전에 초석을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우리 차계에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해주십시오.한잔의 차가 온누리에 퍼지길 기원할 뿐입니다.

20년간 닫힌 말문을 연 정학래 선생. 그는 한국차의 개화기를 온몸으로 겪어온 근대 차문화의 산증인이다. 그의 육성을 통해 80년대 우리차문화를 주도한 차인들의 삶을 마치 어제일처럼 소상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오늘날 우리 차문화계가 그의 등장으로 제2의 문예부흥기를 맞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차의 세계》2005년 4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8-07-18 오후 4: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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