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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차인·의재 허백련

춘설향의 의로운 삶 의재 허백련

이희재(광주대 호남 전통문화 연구소 소장)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다. 무등산으로 가는 주요도로는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증심사로 가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원효사로 가는 길이다. 의재의 자취가 있는 무등산은 증심사로 가는 길에 있다. 예전에는 광주의 부자 현준호씨의 집 입구였던 학동을 지나 증심사로 가는 길에 춘설헌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의재미술관이 개관하여 의재의 동양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의재 선생을 뵐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인품과 실력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가까이서 보고, 또 그 자취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해방 후 서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생 한복을 입고 생활하신 것이나, 우리 차를 생활 속에서 마셨다는 것과 단군신전을 무등산에 건립하려던 의지를 가지고 사셨다는 것은 이 어른을 단순한 화가가 아닌 도인(道人)으로 보는 이유다.

생활공간 속의 차, 차나 한 잔 드시지[喫茶去]
 
1958년에 의재화실로 춘설헌이 개축되었다. 실내는 검소하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몇 권의 화집(芥子園畵傳과 南畵大成 등)과 전적류가 다구(茶具)와 함께 놓여 있었다. 이 곳에서 춘설차의 다향과 묵향이 어우러지고 있었다(이창주, 『의재 허백련 선생의 생애와 예술』, p.72).
춘설헌의 춘설은 초의스님의 『동다송』 “한 사발의 춘설이 제호보다 낫다”는 구절에서 연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남종화가 초의와 추사 등에서 연원하듯 그의 차 역시 일지암의 초의나 강진에서 머물렀던 다산의 차정신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다산 선생님 알제. 해남 대흥사에 초의시님하고 친하셨거든. 그 다산 선생님이 “차 먹는 국민은 흥하고 고춧가루 먹는 국민은 망하느니라”는 말씸을 늘 하셨다고 해. 처음에 나도 그 얘기를 듣고는 웃었어. 그런디 그 뒤로 일본놈들이 나라를 삼켜버리지 않던가. 그래서 선생님 말씸이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생각을 하게 됐어. 차는 마음이 열리고 부지런해지는디. 고춧가루는 기가 열려 나른해져 버린단 말이어! 사람이 게을러져 버리제. 술을 마시면 미쳐버리니 말할 것도 없고….
- 최계원, 『우리 차의 재조명』

의재의 차는 별다른 격식을 차리지 않는 손님을 편안하게 하는 다법(茶法)이었다. 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차를 권하면서 자연스럽게 차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춘설헌을 찾았던 최남선은 의재의 다도가 초의와 추사에게 유래했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무등차 - 춘설차(春雪茶)

천고의 무등산이 수박으로 유명터니
홀연히 ‘증심춘설’ 새로 고개 쳐들었네
이 백성 흐린 정신을 행여 밝혀 주소서.

차 먹고 아닌 먹은 두 세계를 나눠보면
부성(富盛)한 나라로서 차 없는데 못 불러라
명엽(茗葉)이 무관세도(無關世道)라 말하는 이 누구뇨.

해남변(海南邊) 초의석(草衣釋)과 관악산하 완당노(阮堂老)가
천리에 우전차로 미소 주고 받던 일이
아득한 왕년사(往年事)러니 뒤를 그대 잇는가.

초의와 추사의 차와 그림은 소치를 이어 미산에게 그리고 의재에게 이어진다.
그것은 조주선사의 “차나 마시고 가게[喫茶去]”의 담담한 선(禪)의 정신과 일미(一味)이다.
보통 다도라고 하면 특별한 다실(茶室)을 마련하고 엄격한 절차와 의례에 따르는 것을 연상한다면 의재의 다도는 생활과 유리된 공간이 아니라 그의 생활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다도는 차를 마시는 격식보다는 오히려 차를 우려내는 방식에 있었다.
초의선사의 법손인 응송스님 역시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음으로 보아 의재의 다법은 초의차의 계승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차의 정신은 잡스럽고 삿되지 아니한 곧음의 정신

의재의 기거가 불편하여 누워 있으면서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거기에서는 차 한 잔의 향기만큼 내 인생이 향기로웠을까 하고 반성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에게 있어서 차는 단순한 건강음료가 아니라 맑은 기운을 상징하는 정신적인 의미도 있었다.
“나를 따르던 제자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병든 나를 찾아와 준다. 그들은 춘설헌 남향방에 누운 나를 보고 나는 그들에게 춘설차를 한 잔 권한다. 나는 차를 마시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내 한평생이 춘설차 한 모금 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를 생각하고 얼굴을 붉히곤 한다.”
의재는 평소에 자신이 병없이 장수하는 비결을 차생활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네. 잠도 적게 오고. 옛날 중국에서는 도인들이 마셨거든. 몸이 가벼워진다고 해.”
 건강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의재는 1978년 87살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게 차 때문이제. 차를 마시면 병이 안 생겨. 병이 안 생기면 오래 사는 것 아니어? 사람이 건강해야 마음도 곧고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여.”(최계원, 『우리 차의 재조명』)
우선 의재의 차에 대한 애호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머리를 맑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할 뿐만 아니라 병을 예방하는 실제적인 효능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차와 다른 자극적인 음식이나 술은 사람을 해롭게 하지만 차는 자신의 장수를 돕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 다음은 차의 맑고 곧은 성향에 대한 애찬을 들 수 있다.
“차나무는 여자와 같다고 해. 차나무는 외뿌리인지라 옮겨 심그면 죽거든. 그렇게 옛날 사람들은 신부가 시집가면 시댁 사당에다 차를 올리고 인사드렸다는 것이여. ‘나도 차나무같이 이 집에서 살다가 죽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하는 것이제. 조상께 제사를 올릴 때도 차를 올렸제. 그래서 차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의재는 춘설헌을 찾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손수 차를 따라주면서 “차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이어. 차에는 다섯 가지 맛이 있거든. 달고, 쓰고, 시고, 떫고, 맵단 말이어. 이것이 잘 어울러지니께 얼른 모를 뿐이어”(최계원, 『우리 차의 재조명』)라고 말한다.
의재는 이처럼 차를 마시는 격식에서 화(和)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차의 맛이 화(和)를 상징하며, 마시는 격식에서 경(敬)을 찾은 것이 아니라 차의 정신이 잡스럽고 삿되지 아니한 곧음(敬과 상통)의 정신임을 강조했으며, 차의 격식에서 정(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차의 향기가 맑음을 강조했다. 또한 차를 마시는 격식에서 적(寂)이 아닌 차맛의 담담함(寂과 상통)을 이야기한 것이다.
 한국의 다도는 다산초당을 다실로 만들어 차생활을 한 다산, 일지암을 다실로 만들어 차생활을 한 초의 그리고 추사 등에 의해 빛이 났으며, 그들의 차생활은 마시는 격식에서 도를 구했다기보다는 차라고 하는 성향에서 화(和), 경(敬), 청(淸), 적(寂)의 정신적 의미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재는 그러한 선학들의 다도를 계승하여, 일본식이나 왜식이나 하는 차에 대한 폄하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 차를 이야기하고 차를 보급했다. 

무등산 작설차를
곱돌에 달여내어
草衣의 茶法대로
한 잔 들어 맛을 보고
다시 한 잔 맛을 보고
茶道를 듣노라니
밤 깊은 줄 몰랐구나.
  
            - 이은상, 「전남 특산차」

무등산에 초현대식 자연친화적 의재미술관이 들어섰다. 어떻게 보면 소박하고 검소한 선생의 생활과는 무관하게 자로 잰듯한 기념관에서 소박하게 차를 마시며 유유자적 자신의 삶을 사셨던 선생의 자취와는 모순되는 듯한 초현대식 빌딩이다. 그러나 선생이 평소 쓰던 문방구와 다구가 전시되어 있어 의재를 기리는 후학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말없이 무등산의 가을이 깊어가지만 의재가 있었기에 무등산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차의 세계》2002년 1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8-07-18 오후 4: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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